원래는
잠깐 입어보려고 한 거예요,
지난 설에 마련한 옷이 너무 고와서
소만도 지나고 강건너 모내기하러
엄마 아빠 새벽같이 나가신 다음
정말 잠깐만 입어보려고 했다니까요.
근데 뭘 두고 가셨다고
엄마가 돌아올 지 누가 알았겠어요,
보자마자 등짝을 후려갈기시길래
토라져서 빽, 소리치고 뛰쳐나오긴 했는데,
제가 또 가긴 어딜 가겠어요,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에
새들이 낟알을 쪼아먹을까 올 밖에요.
내일모레면 수확도 할텐데,
그래도 이 헛헛한 속을 채울
보리밥도 먹을 수 있을텐데요.
그래서 잠깐 서 있는 거예요,
정말 잠깐만이라니까요,
이렇게 날씨도 더워지는데.
철산동 근처 안양천변에는
보리밭과 유채밭이 조성돼 있다.
예전에는 보리밭만 보였는데,
어느샌지 허수아비도 여럿.
(어쩌면 그동안 내 눈이 밝지 못해
못 보고 지나쳤던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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