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해서만 물어보는가.
아이들이 그들의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인생을 누리고 싶은가’는
왜 궁금해하지 않는가.
왜 무엇이 되는 지만 중요하고
왜 그것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어 그것이 되고 싶은지는
묻지 않는가.
어떻게, 무엇을, 이 궁금하지 않으니
그 목표는 늘 富의 척도로 채워지기 일쑤이며,
무엇무엇을 이루고 싶어 무엇이 되기 보다
무엇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물질과 권력의 논리가 자리잡는다.
무엇보다 ‘무엇이 되고싶다’가
삶의 목표가 될 경우
그 목표가 달성된 이후의 삶은
무의미하거나 혹은 무기력할 것이고,
이는 우리 사회의 (아울러 나 자신의) 가장 큰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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