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손으로 그리워.
— 정세랑, “이만큼 가까이”
・
친구가 개 한 마리를 더 들였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리트리버를 그리더니,
이번에는 집을 잃은 보더콜리.
보내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대략 30년쯤 전 내 품에 머무르던,
그리 화목하지는 않았던 가족,
한참 피어오르는 여드름과
못됨과 못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나의 청소년기에
다행스럽게도 온기를 내 품 안에 전해주던,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남의 손으로 넘어 가
최후도 같이 못 했던,
혈통도 뭣도 없는
시골 잡종견이었지만
어쩌면 내 인생에 가장 소중했던,
그럼에도 아마도
잊고 있었던 녀석이 떠올라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때보다는 조금은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 요즘이었다면
같이 할 수 있는 게 참 많았을텐데.
오랜만에 장롱 속에 앨범을 꺼내
녀석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참 못 해준 게 많구나.
보고 싶다,
아주 많이 그립다,
손으로 그립다.
'Soliloqu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CCVII : 자전거길의 가장 좋은 점은 (0) | 2017.10.07 |
---|---|
CCV : 밥을 지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0) | 2017.10.02 |
CCIV : “You see? Life. Yes, life sentence.” (0) | 2017.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