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를 잡다가 생각하니,

모기 한마리를 잡는 건 어쩌면

그들의 진화에 촉매가 되는 걸 수도 있겠다.


개체에게는 늘 생존이 절대적이지만

종(種)에게는 죽음이 삶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의미가 있지 않은가, 


종(種)을 정의하는 것은 죽음[각주:1],

무릇 모든 진화는 

수많은 죽음을 딛고 이뤄지는 것이다.


  1. 이런 생각이 온전히 내게서 나왔을 리는 없고, 최근 읽은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가 많은 영감을 준 탓일 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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