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는 길에는 ‘고작’ 해발 50미터 정도의
동네 뒷산이 하나 있는데,
산책로에 따라 가로등이 설치가 안 된 곳이 많아
밤길을 걷게 되면 실로 으스스하다.
빨리 걷는다면 10분여로 지나갈 수 있고
바로 옆길로 빠지면 아파트 단지가 있어
특별히 위험할 일이야 없지만,
작은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며 걷다 보면
내 그림자에 깜짝 놀라곤 한다.
딱히 담도 크지 않고 겁도 많은데
굳이 밤에 이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사람없는 길, 달빛도 느슨한 밤
과연 불빛도 없는 숲이 어떨지 상상하기에,
조금이나마 맛보기에 적당하기 때문이고
그럼으로써 인간이 이룩한 것들에 대해
겸허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인간이 문명으로 이뤄낸 성취는 대단하지만,
그리고 감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편리함과 이로움을 얻기 위해 치러진,
자연이건 혹은 타인의 노동력이건 간에,
그 비용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편리함은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어떤 것들의 희생이
반드시 뒤따르기 마련일 터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을 떠나서,
사람들이나 불빛이 보이지 않는 숲길은
스산하며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매우 아름답다,
잠시 손전등을 끄면 내 자신이
마치 숲으로 스며들거나 빨려들 것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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