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노동착취를
숨죽여 감내하다 고장 난 기계에 짓눌려
스러진 열여덟 살 민호,
그리고 현장실습생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수많은 민호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질량을 얻는 것은,
하지만 지독히 예외적인 사건일 뿐이다.
대학 비진학자들의 산술적인 지분은
30%를 넘지만,
현실의 도표에서는 정확히 0%다.
– 안영춘, 조금 다른 수능일은 오지 않았다,
한겨레 2017.11.30(목) 27면
보이지 않는 사람들,
마포대교 남단을 점거하고
욕을 얻어먹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건설노동자 같은 사람들,
그나마 점거할 만한 조직도 없이
날마다 톱니바퀴 아래 신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이민호 군과 같은 현장실습생들,
계약된 개인사업자라는 이름으로
노동성조차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
사회주변부로 밀려난 장애인들,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 이외에는
제대로 된 정책조차 나오지 않은 농민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목록은
너무 길어 다 옮길 수도 없는데,
그렇다면 문제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있는 것인가
보지 않는 사람들에 있는 것인가,
혹은
보는 것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게 만드는
나 같은 위치에 있는 자들,
이른바 ‘언론’에 몸담은 자들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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