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챗구멍,
특히 욕실의 수챗구멍을
청소하는 일은 누가 뭐래도
달가울 수 없는 일이다.
머리카락과 체모와
떨어져나간 살갗의 찌꺼기들과,
거기에 들러붙은 미생물들까지,
뭐랄까, 내 죽음 이후 육체가
어떤 변모를 거칠 것인지
짐작되는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일텐데,
바로 그래서
이사를 앞두고 오늘
수챗구멍을 청소한다.
내 살점들과 내 체모도 이렇게
불쾌하고 두려운 법인데,
이사오자마자 물이 잘 안 빠져서
누구인지도 모를 이의
그것들을 대면해야 한다면
과연 얼마나 역겨울 것인가.
누군가 사람은 난 자리가
깨끗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더럽힌 것은 내가 치울 것,
할 수 있는 한 더럽히지 않을 것,
그것이 내가 이사를 하면서
지키고 싶은 나만의 원칙이자,
내가 지구라는 별에
잠시동안 거주하면서
떠날 때까지 마음에 담고 싶은,
몸으로 옮기고 싶은
삶의 자세다.
'Soliloqu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CCLV : “인류가 지금 크기의 절반 정도로만 줄어들어도” (0) | 2018.01.29 |
---|---|
CCLIII : “시급한 건 목격자로서 행동 매뉴얼, 남의 일에 간섭하고 목소리를 내는 훈련” (0) | 2018.01.08 |
CCLII : “나는 그저 먼 데서 손만 비비고 있다” (0) | 2018.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