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챗구멍, 

특히 욕실의 수챗구멍을 

청소하는 일은 누가 뭐래도

달가울 수 없는 일이다. 


머리카락과 체모와

떨어져나간 살갗의 찌꺼기들과, 

거기에 들러붙은 미생물들까지, 

뭐랄까, 내 죽음 이후 육체가

어떤 변모를 거칠 것인지

짐작되는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일텐데,

바로 그래서 

이사를 앞두고 오늘

수챗구멍을 청소한다. 


내 살점들과 내 체모도 이렇게

불쾌하고 두려운 법인데, 

이사오자마자 물이 잘 안 빠져서

누구인지도 모를 이의 

그것들을 대면해야 한다면

과연 얼마나 역겨울 것인가. 


누군가 사람은 난 자리가 

깨끗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더럽힌 것은 내가 치울 것, 

할 수 있는 한 더럽히지 않을 것, 

그것이 내가 이사를 하면서 

지키고 싶은 나만의 원칙이자, 


내가 지구라는 별에 

잠시동안 거주하면서

떠날 때까지 마음에 담고 싶은, 

몸으로 옮기고 싶은

삶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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