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 활동을
누군가 배후에서 기획했다거나
음모에 이용될 것이라고 보는 건
일본 우파의 관점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시라도 미투 운동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고
이 운동의 미래를 예언하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귀엣말을 들려주고 싶다.
설령 당신의 예언이 적중하더라도
생존자들이 말하는 진실은 달라지거나
훼손되지 않는다고.
당신에게 당장 시급한 건
공감능력이 바닥난 젠더적 몽매 상태를
자각하는 거라고.
– 안영춘, ‘그의 예언이 적중하더라도’, 한겨레 2018.3.1(목) 19면
극우 집단이 배후 세력을 추궁하며
주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한 것은
‘모든 정보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자기 앎의 절대화에 의해 가능했다.
이런 정보 통제를 염려한다는 명분을 띠고 있으나
‘모든 흐름을 아는 자’가 미투의 배후 세력이
등장할 것이라며 경고하는 ‘예언’은
말 그대로 발화 주체를 절대적 앎을 지닌
신의 자리로 등극시킨다.
그리고 신적 권력을 통해
추궁당하는 집단의 목소리를 빼앗고,
말들의 조각도 불태워 버리고 있다.
- 권명아, ‘배후 공작과 성지 수호의 메시아주의’, 한겨레 2018.3.2(금) 23면
∙
예언이란 현실과 논리를 능가하는 것,
그것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가해자의 목소리일 수밖에,
그렇게 아무 말이나 하면
사람들이 믿어줄 것이라고,
아니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도 심히 걱정스럽고,
혹시라도 그걸 믿게 될까봐,
아니면 유사한 또다른 아무 말들을
내가 퍼뜨리고 다니게 될까봐
나 자신 역시 심히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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