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땅콩이 땅 속에서 열린다니, 

그래서 땅, 콩, 이라니,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많은 신비로 가득차 있는가.


이제부턴 땅, 콩, 하고 발음하면

詩적인 무언가가 내 마음 속에서 

메아리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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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eans No. 

It's that clear. 



인류의 문명은, 특히 근대 이후의 문명은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갖는 걸 목표로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그렇게 제곱의 경제학, 

기하급수적인 기술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지구는 한계가 있고, 엔트로피의 법칙은 피해갈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가진 이들의 논리적인 귀결은, 

덜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 더 갖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1% 대 99%의 불평등을 낳은 원인이다. 


그렇다면 이것의 해법은 다른 것이 없다. 

더 많은 사람이 조금씩 덜 갖는 것.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내려놓는 것. 

그래서 조금씩 덜 먹고, 덜 쓰고, 덜 갖고, 덜 버리며, 


무엇보다 

이 지구에게 덜 부담을 주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은 꿈이다. 


능력에 부치면 

놓아버리는 것이 맞다.

 


생각해보니

절실하게 원해 본 적이 없다. 

이제라도 뭔가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내 인생은 낙제를 면치 못할 듯하다. 

 늘 그렇듯

위기를 견뎌내는 것은,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는 것은 

사회적 강자다. 

위기는 약자를 제물로 

강자의 배를 채운다. 


그러므로 위기는 

강자들의 잘못이나 실수로 초래된 

어떤 결과가 아니라, 

강자들이 더 강해지고 싶어서 저지르는,

약자에 대해 배타적이고 의도적인 

계략, 혹은 술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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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유효기간은 늘 그 최선을 다 하는 순간이다.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최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욕심 부리지 말고, 

멀리 바라보되 이 순간에 최선을 다 할 것.  

Life; what an effing slow process of 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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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꽂힌 억지 슬픔들의 목록,


나는 여전히 


슬픔 앞에서 어떤 말이 가능한 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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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투쟁. 


이를테면

 “컵라면이라도 먹을 점심시간이라도 달라”며

준법투쟁을 한다는 

어느 버스 회사 기사들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며 문득 궁금해진다, 


이 나라 말고 어느 민주국가에, 

‘준법투쟁’이라는 말이 존재할 것인가. 


준법투쟁이 투쟁으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건, 

매일매일의 노동을 하기 위해 

매시간 시간 불법을 저질러야 한다는, 

혹은 불법에 동조해야 한다는 이야기. 


스스로의 노동에 끊임없이, 

늘, 

분노와 자괴감을 동시에 느껴야 한다는 이야기. 


당신이 그렇듯, 

또 당신 옆의 내가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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