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I do not know which is falling faster; 

a night or a flower.




봄 밤은 서둘러 찾아온다 

어둠이 떨어지는 속도의 아찔함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빠른지 혹은 더딘지

- What you really want is not going to happen in your life, ever. 

- Oh, really? That's great. It is exactly what I always wanted.


말이란 본디 가진 자의 것. 

그러니 믿지 말라, 

간혹 당신을 위하는 말처럼 들린다 해도

얄팍한 시혜 이상이 아닐 것이니. 




자본과 노동, 상품의 세계화로 

삶을 낭떠러지 끝으로 내몰더니

이제는 멍청함과 아둔함마저 세계화하다니,

인류는 역시 구제불능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과 불운에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대부분의 경우 결국은 찾아낸다. 

그게 진짜 이유든 아니든 그들은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의 분노를 그것에 돌릴 수 있기만 하다면. 


분노를 돌리기에는 추상적인 무엇 대신에

주위의 약한 존재들이 더 적합하다. 

편리하고, 

효과적이며, 

자신들이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들의 분노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홉스봄씨, 당신은 너무 성급했습니다. 


20세기가 극단의 시대였다면 

이제 다가오는 시간들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극단’이라는 말조차 너무나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 세계에. 



혐오에 대해 혐오로 응답하는 것은 정당한가. 


강자의 약자에 대한 혐오와 

약자의 (그러한) 강자에 대한 혐오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는가. 


혹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내가 사회적으로 

(남성, 정규직, 이성애자, 비장애인, 기타 등등이라는)

‘강자’의 위치에 있는 탓은 아닌가.


과연 ‘약자’의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이런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한가. 

 



There is no security without women’s security.

—  United Nations on Twitter, 20 June 2016




... 그러므로,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폭력과 성희롱에 시달리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기도 하는 이 나라는, 

전쟁 중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른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첫 칸부터 마지막 칸까지 표정 없이, 홀린 듯 

사람들 사이를 부딪혀 가며 오가던 남자, 


미용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속에서 

끊임없이 혼잣말을 하던 여자, 


인생이란, 세월이란 왜 이리 고달프냐고,

어디 자리할 곳 의지할 곳 없이 막막한 것이냐고 

가슴에 응어리져 답답해 온다.


세상에는 슬퍼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고, 

슬픈 사람들도 참으로 많아서,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우리 인생이란 별볼 일 없는 것이기에)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 윤동주, “팔복” 



하루하루가 슬픔의 나날인, 
추모의 나날인, 
그런 사회, 

그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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