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작곡가
제오르제 에네스쿠(Geroge Enescu)가 삽십대 초반인
1913년부터 1916년까지 작곡한
독주 피아노를 위한 세번째 모음곡집, Op.18은
모두 일곱 곡으로 이뤄져 있다.
서주 격에 해당하는 Melodie와
두번째 곡 초원(Steppe)으로부터의 목소리,
제3곡 우울한 마주르카,
춤곡의 리듬을 살린 제4곡 Burleske와
역시 경쾌한 다섯번째 소품 Appassionato를 거쳐,
위의 연주는 바로 여섯번째 곡인 Choral(합창)과
이에 바로 이어지며 상호연관성을 드러내는
마지막 곡 Carillon nocturnes (저녁 종소리)의 실황.
영국의 음악전문지 Gramophone지가
2003년 에네스쿠의 모음곡 세 곡을 연주한
Luiza Borac의 음반을 리뷰하면서
가장 필청의 트랙으로 이 두 곡을 꼽으며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화성의 진행(Choral)과
메시앙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종소리의
선례라 할 만한 Carillon에 대해 언급하는데 1,
실로 메시앙의 “아기예수에 대한 스무 개의 시선”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사실 에네스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가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라는 것,
루마니아의 민속선율을 작품에 녹여냈다는 것
(특히 2곡의 루마니아 랩소디는 그의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악곡이다),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지만
뛰어난 바이올린 주자일 뿐 아니라
제자도 많이 길러내어,
그의 이름을 딴 콩쿠르가 열리고 있다는 것 정도.
덧붙이자면 예후디 메뉴인의 스승이었다는
후일담적인 에피소드까지.
그러나 사실은 그의 작품에 대해,
또는 그의 고국인 루마니아에 대해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피아노 모음곡집은
그가 후기 낭만주의에서 근현대음악으로 넘어가는 시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꽤 성공적인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아울러 그가 이 곡을 완성한 1916년,
루마니아는 세계 1차 대전이라는 전화에 휩쓸려
동맹국의 일원으로 참전을 결정했으니,
어쩌면 훗날 메시앙의 작품이 2차 대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것처럼
이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두 곡의 소품 역시
전례없는 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한 전쟁으로부터의
안식을 구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합창, 그리고 저녁 종소리.
사람들이 집으로 향하는 시간,
군인들은 전쟁터로 향해야만 했을 지도.
그런 신산한 삶에 대한 위로였을 수도.
(이 작품의 연주는 유튜브에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다행히 위 링크의 연주는 아주 뛰어나지는 않으나
작품의 분위기를 맛보는 데 부족함은 없다.)
†
다음의 링크는
4분 31초에 시작되는 두번째 곡 Fugue와
8분 10초경의 세번째 곡 Adagio를 듣다보면
J.S. 바흐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그의 첫번째 피아노 모음곡집.
루마니아의 피아니스트 Aurora Ienei의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