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선정 올해의 책 1위, 

버락 오바마가 뽑은 2015년 최고의 책, 

이런 따위 수식어가 붙은 

운명과 분노”를 읽고 있는데,


도대체 왜 따위 책이 

그런 대접을 받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시적이고 우아한 문체’라는 문구처럼

원문의 유려함이 우리 말로 번역하기 곤란했거나

(그래서 옮긴 이의 힘에 부치는 글이었거나), 


또는 대략 1980년대 이후 미국사회와 

세대 마다의 말투, 문화적 배경 등을 이해하지 못하면

당최 알아먹을 수 없는 글이어서 번역이 힘들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시대의 글이란, 

글의 좋고 나쁨의 기준이란 얼마나 괴상한 것인지. 


등장인물들의 삶은 단선적이고

묘사에도 구체성이 너무 떨어져서

삶으로부터가 아니라 그저 펜 끝에서 창조된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인물들에 불과해, 


혹여 원문이 워낙 유려했다고 치더라도

유려한 문장 만으로는 용서가 안 될 글. 

마저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럽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고들 한다. 

다시 말해 디테일이 부족하다면 

그 작품은 비판이라는 ‘악마’의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


김훈의 “공터에서”(해냄, 2017)는

1979년에서 시작해 80년대가 주된 배경이다. 


언론통폐합으로 직장을 잃은 주인공이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전전하다가

마침내 자리잡은 곳이 택배회사, 

그 중에서도 오토바이 퀵서비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적어도 한국 위키피디아의 자료 따르면[각주:1]

1984년에 한국의 유학생이 일본에서

유사한 서비스를 보게 된 후

90년대 초반 귀국해 최초의 이륜택배 회사를

개업한 것이 이른바 퀵서비스라고 한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이 신호대기선에서 

주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난데 없이 외제차들이 즐비하다. 

80년대에, 과연 주인공은 

어느 동네 신호등 앞에 서있었던 것일까?


많이 양보해서 이 부분이

90년대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친다고 해도

10여년의 세월에 대한 어떠한 서술도 없이

시대를 건너뛴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80년대라는 암시가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터라 더욱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

마장세에게 느닷없이 들러붙는 

마약 밀수입이라는 혐의는, 

도대체 소설 전체에서 왜 필요한 것일까.


우리 아버지들의 삶은 이런 특이한 것이 없었더라도

충분히 신산스럽고 고달팠다. 

특수한 사례들을 外揷함으로써 

오히려 소설의 핍진성, 

다시 말해 ‘그럴 법함’만 의심스러워졌다. 


느슨한 구조, 

앞뒤가 맞지 않는 플롯, 

엉성한 디테일. 

이른바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그 관심에 값할 만큼 충실한 작품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다시 한번,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 

그리고 21세기 한국 소설 가운데, 

이 악마를 극복한 사례들은 참으로

찾기 쉽지 않다. 






  1. 물론 위키피디아의 자료가 오류가 있는 경우도 많고 절대적으로 옳은 자료는 아니다. 더 확실한 1차자료는 업태로서 "이륜택배업"이 언제부터 세무서에 등록됐는지 알아보는 것이나, 이 글을 위해 그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뒤늦게서야 보게 된

피나 바우쉬를 위한 다큐멘터리 영화. 

붙일 말이 없다. 


하기는

춤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춤을 다룬 영화에. 


영감으로 충만한 예술가들과, 

그들을 한 치의 모자람 없이, 

아니, 

자신의 영감을 더해 담아낸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역시 

빔 벤더스. 


http://www.pina-film.de/e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