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다녀간 러시아 친구가

선물로 가져다 준 이 정체불명의 상자를

언젠가는 열어봐야지 하면서도 

무슨 결명자처럼 생긴 걸 어떻게 먹나 싶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드디어 오늘 친구가 가르쳐 준 대로

끓는 물에 팔팔 10분 정도 익혀

샐러드와 함께 먹어보니 

아니, 이럴 수가, 

이런 쫀득하고 놀라운 맛이라니.


‘크루파 그뤼예취니예바야...’ 어쩌고 하는 이름을

안 되는 러시아어로 타자를 쳐 검색해보니

다시 한 번 아니, 이럴 수가, 

이게 메밀이었다니. 


하기는 우리나라에서야 

빻아서 가루를 내 묵을 쑤거나

국수를 말거나 아니면 메밀전병을 해먹든가

혹은 아예 볶아서 차로 우려 내지, 

통으로 삶아서 샐러드에 먹는다거나

아니면 밥에 넣는 경우도 극히 드물테니

메밀의 낟알, 도정한 낟알을 본 건

생전 처음인 게 당연했다. 


글루텐이 없고 단백질 함량이 높으며

비타민과 아미노산 등 이것저것 

좋은 것도 많이 들어있다고 하고, 

무엇보다 쫄깃한 식감이 좋아

채식을 하는, 또는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꽤 매력적인 곡물일텐데,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도 ‘깐메밀’ 또는 

‘메밀쌀’로 검색하면 판매하는 농가가 좀 있는 듯. 


그 중 한 곳에서는 메밀은 산패가 빨리 돼

주문하면 그제서야 도정해 판매한다고 하니 

우선 1킬로그램을 주문해 봐야겠다. 


만약 러시아산 메밀 맛과 차이가 나면

동대문 쪽을 헤매다 보면 

러시아 식품점이 있지 않을까, 

안 되면 부산 러시아 거리에라도 가든가

어떻게든 구해지겠지,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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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를 구워 먹겠다고

4만원이 채 안되는 오븐을 사고 보니 

괜히 욕심이 생겨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를 따라해 본 

가지 그라탱.


가지는 너무 얇게 썬 데다 

양파, 파프리카, 마늘과 토마토 소스는

양이 너무 많아서

가지는 온데간데 없고

사진에 보이는 치즈 토핑은 

그럴 듯해 보여도

삼층밥처럼 재료들이

뭔가 어색하게 쌓여있었는데, 


그러나 생각보다는 먹을 만 했다. 

하기는 치즈와 채소의 조합인데, 

맛이 없으면 얼마나 없겠는가.


다음 번에 또 하게 되면

가지 한 개에 양파 작은 거 하나와

파프리카 작은 거 하나, 

마늘 6쪽 정도와 

토마토 소스 네 숟가락 정도면

적당할 듯 하다. 

가지는 어슷하게 썰지 말고

길게 2등분 해서 해볼까, 싶기도.


모든 레시피가 가지를 

먼저 살짝 굽는 걸로 돼 있는데,

근데 정말 미리 구워야 하는 걸까.


어쨌든 오븐 온도와 시간은

가지를 구워놨다는 가정 하에

180도 10분이면 충분한 것 같다. 


그라인더로 갈 때

빵굽는 냄새가 올라온다.

이 거친 표현을 

커피볶는 가게 사장님은

너티(nutty)함이 강한것 같다고

전문가적인 용어로 번역해 준다.


입으로 넘겨보면 그냥 구수한 맛은 아니고,

혀를 감아나가는 느낌이 뭐랄까, 

성격파 배우의 연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볶은지 열흘 내지 2주 정도 지나면서

다른 원두가 그러하듯이 

맛과 향이 미묘하게 변하는데,

본래의 거친 입자감이 좀 가라앉으면서

오히려 독특한 산미가 올라온다. 


이래서 어떤 원두에 대해

딱 한 잔 마셔봐 놓고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건

매우 성급한 일이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200g 정도 내려먹어보니

드립보다는 모카포트가 낫다. 

뜨겁게 후후, 불면서 마시는 원두.


여름에 다시 구해 

아이스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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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신이라고 

달리 해드릴 게 생각이 나지 않아

유자차를 담그다 보니 

여러가지 새로 깨닫다


유자에 씨가 이렇게 많았구나, 

10kg을 사면 씨가 2kg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구나, 


농사를 지으며 책을 내신 분이

농가에는 늘 쓰레기가 쌓여있기 마련이라라며, 

누군가 우리가 먹는 걸 생산하기 위해

그 열 배 스무 배는 버려진다고 썼던 것이

돌연히 납득이 되는 순간. 


그렇다면 우리의 먹음이란 

얼마나 곤고한 것인가, 

얼마만한 수고로움이 바탕한 것인가, 

또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혹은 먹을 수 없는 것의 구분은

얼마나 고단한 것인가, 


정말 내가 먹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런 원재료를 사다 직접 해보는 것이로구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버려지는 것들을 보니

식탐과 미식이라는 게

古來로부터 많은 문화에서 

죄악시되었던 게 당연한 것이로구나,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이 

어디로부터 오는 지, 

어떤 과정을 겪으며 오는 것인지

보지 않기 때문에

이 시대에 먹을거리로 인해 

이렇게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로구나.


플라스틱과,

또 플라스틱과, 

대개는 다시 플라스틱으로 감싸인

‘상품’ 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먹는다는 것에 대해 어떤 반성도 없이

그저 먹는 것이로구나. 


그리고 사실 

유자차의 향기란

생유자의 향기를 결코 넘을 수 없으며

그저 그 향기를 

조금이라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이를테면 박제하는 것에 불과하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 가득한 유자 냄새에 취해

다시 1주일을 

설렘으로 보낼 수 있겠구나. 


유자차를 담그며 심심을 덜었는데

1주일을 더 

심심하지 않겠구나. 


ps.

유자 2킬로그램을 사면 

다이소에서 파는 1리터 용기 

네 개를 가뿐히 채운다. 

그러니 충분히 대비하고 주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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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조합 사무실 갖다 줄 

레몬청 완성. 

나름 다이소에서

개중 예쁜 병을 구해 담아 보았다. 


백설탕이 아닌 

유기농 황설탕을 써서 그런가, 

달지 않은 건 좋은데 

맛도 조금 죽은 듯 싶다.


여하간 뱅쇼나 과실청을 만드는 게 즐거운 건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선물해 줄 수 있다는 것. 

(혹은 선물을 가장한 ‘임상실험’이라든가.)


정성들여 담근 것이니

곰팡이 슬도록 놔두지 말고 먹어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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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게 직장생활의 ‘방학’을

두 달 넘게 맞다보니

그냥 이것저것 해보고 있다. 

인터넷 보고 따라했는데

내가 봐도 뭔가 어설프지만, 

1주일 뒤에는 알게 되겠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1시간 동안은 즐거웠으니. 



시내 테이크아웃 음료점에서 먹어보곤

처음으로 시도해 본 뱅쇼(vin chaud).

프랑스어여서 이국적이지만

뜻을 알고 보니 mulled wine이다. 

유럽의 겨울 음료로 

감기에 좋다


와인 1병 (750ml),

사과 2개,

레몬 2개,

계피 한 줌,

흑설탕 4스푼을 넣고

뭉근한 불에 1시간 20분 끓이고 나니

그럭저럭 먹을 만 하다.


다만 시간은 1시간쯤으로 줄이고 

와인이 끓기 시작할 때 쯤 과일을 넣으면

보기도 더 좋고 식감도 살아날 것 같다. 


또 꿀이 있으면 좋겠지만, 

싸구려 꿀을 쓰느니 

흑설탕을 쓰는 게 나쁘지 않겠다고

짐작해 본다.  


와인은 1만 2천원 짜리를 

1만원에 샀는데 나쁘지 않다. 

굳이 더 비싼 와인을 쓸 필요는 없겠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끓인 와인 냄새가 집 안에 배어있는 것도

나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다. 


훌륭한 음료 레시피를 하나 배웠다. 

겨울 내내 두고두고 해 먹게 될 듯. 


 + updated on 1 Dec. 2017


세 번 정도 만들어보니 

사과 2개, 레몬 2개는 

와인 한 병에 너무 많은 듯 싶다. 

(음료라기보다 수프 같아진다.)


아예 와인 두 병을 쓰거나, 

(하지만 너무 오래 먹게 되니)

그냥 사과 1개에 레몬 1~2개 정도 넣는 게

‘음료’라는 이름에 걸맞은 듯. 


만약 당신이 첼바를 좋아한다면

아리차도 좋아할 확률이 크다. 

어쩌면 그보다 더 좋아하게 될 수도. 


요즘 하는 말로 하자면

꽃향기와 과일향기의 ‘끝판왕’이라고 해야할까. 

첼바와 기본적인 성격은 유사한데, 

그보다 더 산뜻하고 짙은 향기가 일품. 


좀 굵게 갈아서 상큼하게 마시든

잘게 갈아서 바디감을 올라오게 하든, 

핸드 드립이라면 어떻게 내려도 맛있다. 


모카포트로 내리는 건

맛보다는 향을 뽑아내는 것이 더 어울리는

아리차에는 그닥 적합하지 않다는 느낌. 

굳이 블렌딩까지 해서 빨리 내리는 것보다

핸드 드립으로 마땅한 대접을 해주는 것이 좋다. 


100g에 몇 만원씩 하는 고급 원두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가격대에서

이만한 커피는 또 없을 것이다. 


달콤함, 새콤함, 구수함, 모든 기본을 다 갖춘 훌륭한 커피. 

다만 그리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품종은 아니라는데, 

단골 커피 (볶는) 집 사장님의 분석으로는

“이름에 ‘시다’가 들어가서 신맛이 강한 줄 알고 싫어하는 듯” 하다고. 

물론 우스개 소리겠지만. 


신맛을 강하게 볶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개인의 취향 내지는 입맛 차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고, 

다만 신맛이 잘 안 난다고 하여 

굳이 내 입맛이 이상한가,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바디감이 묵직하며, 첫 모금에 혀가 짜릿하다. 

좀 일반화시키자면 

에티오피아産스럽게 꽃향기를 비롯해 향미도 풍부한 편. 


따뜻하게나 차게나 다 좋으며, 

진하게 내려먹어도, 좀 굵게 갈아 가볍게 먹어도 좋다. 


같은 에티오피아의 첼바가 좀 더 대중적으로 

한번에 반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 반면, 

시다모는 좀 꾸준히 먹어야 그 매력이 비로소 빛난다. 


‘커피’의 이데아와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커피’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여러가지 맛이 골고루 갖춰진 품종인 듯. 

 







유명한 커피는 유명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맛이란 생각보다 보편적이다. 


어디선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首位를 차지했다는 얘길 본 적이 있는데, 

그럴 만한 맛과 향이다. 

꽃과 과일 향기, 산뜻한 바디감, 

그리고 뒷맛의 상쾌함까지, 

참 많은 걸 갖춘 좋은 원두다. 


허니 프로세스란, 

원두를 보통 과육을 벗겨낸 뒤 물로 씻는데

이 가운데 세척과정을 생략하고 건조시키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과육의 맛이 좀 남게 돼 

단맛이 좀 더 강해진다. 


물로 씻는 과정을 생략하고 

천일건조, 즉 햇볕에만 건조시키니 조금이나마

환경에 더 친화적인 생산 방법이라고 하며,  

따라서 값은 약간 더 비싸게 마련이다. 


맛있다. 

향기도 좋다. 

다만 뒷맛이 너무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방금 내가 뭘 마신 건가, 마시긴 마신 건가 싶다. 

커피를 목으로 넘긴 후에도 

입 안에 은은히 남아있는 향기와 뒷맛을 즐긴다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좀 심심한 뒷맛. 

그래서일까, 

아이스로 드립하는 게 더 맛있다,

아이스는 어차피 깔끔하게 먹는 거니까. 


과테말라나 첼바가 매일 먹는 집밥의 느낌이라면, 

근사한 곳에서 실력있는 셰프가 차려준 

정찬(正餐)의 느낌. 

언젠가는 다시 가고 싶지만, 

매일매일 그렇게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맛. 


역시 과테말라, 케냐, 브라질처럼 ‘흔한’ 커피는

흔한 대로 또 그만의 매력이 가득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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