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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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agio.

 

이탈리아어 Ad agio,

영어로는 at ease. 

 

편안하게, 

느긋하게,

 

언젠가 찾아올

안식.

 

2

Andante는

이탈리아어 andare(가다)에서파생된 것,

걸음걸이의 호흡과 박동,

속도와 느낌이라면,

 

Adagio는

끝도 없는 길을 오래도록 걸어온 자가

비로소 취하는 휴식, 

또는 

긴 세월 고단한 생을 이끌어온 이에게

마침내 주어진 안식, 

 

어쩌면 

영원토록.

 

3

우리는 걸어가면서 

곧잘 노래를 부른다. 

 

그러므로 Andante가 노래한다는 뜻의 

cantabile와 같이 쓰이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다.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 1번 가운데 

2악장인 Andante cantabile가 

워낙 유명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면 Adagio cantabile는 그리 흔치 않다. 

아다지오는 어쩌면 노래라기보다는 

읆조림이나 흥얼거림, 

나직한 속삭임이며

기도와 애도에 더 어울릴 법하기 때문이다.

 

4

하지만 베토벤은 

그의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의 2악장에 

Adagio cantabile라는 악상기호를 붙였다. 

 

이 독백과도 같은, 

홀로 나직이 부르는 노래는

그러므로 슬픔의,

깊고도 깊은 슬픔의 노래, 

탄식과 회한의 노래,

그리하여 말을 잃은 자를 위로하는.

 

훗날 사람들은 이 소나타에

‘Pathetique, 비창(悲愴)’이라는 별칭을 붙인다. 

(그의 피아노 소나타 24번의 1악장과

바이올린 소나타 7번의 2악장에도

adagio cantabile가 붙어있다.)

 

5

아다지오 뒤에

간혹 슬픔과 눈물을 강조하기 위해 lamentoso를,

감정의 풍부함을 담아내기 위해 espressivo를

붙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저 조금 더, 혹은 조금 덜이라는

assai와 molto, ma non  troppo 따위가 

따라올 뿐,

 

아다지오는 아다지오다.

굳이 다른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6

그럼에도 가장 흥미로운 아다지오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유명한 아다지오 악장 가운데 하나는 

베토벤의 c#단조 피아노 소나타, 

이른바 ‘월광’의 1악장이 아닐까. 

 

Adagio sostenuto.

sostenuto는 영어로 sustained, 

지속적이고 한결같은 여유로움.

그러나 나는 sostenuto에서 

지긋이 밟는 피아노의 페달을 생각한다,

 

언젠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을 떠올린다,

이제 여기 없는.

 

7

아다지오에는 레가토가 어울리는 법, 

근본적으로 레가토를 단지 

일종의 환영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피아노에서보다 

현악 연주들에서 

아다지오가 더욱 빛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를테면 새뮤엘 바버의 “Adagio for Strings”, 

현악4중주 Op.11의 2악장처럼, 

혹은 지아조토(Giazotto)의 곡으로 밝혀진,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처럼.

 

8

그러나 현악기들 중에서도,

아니 어쩌면 모든 악기들 중에서

아다지오에 어울리는, 

아다지오 그 자체인 악기를 하나 꼽는다면

단연코 첼로가 아닐까.*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Kol Nidrei, 신의 날)”이나

또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 e단조,

아다지오가 아니고선 어떻게 이 곡들을

연주해낼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아다지오로 시작하는 1악장에서

2악장의 렌토(Lento)와 3악장의 아다지오를 거쳐

4악장에서 아다지오로 종지에 이르기까지,

내내 흐느끼고 소리없이 울부짖고 애도하는 듯한

엘가의 협주곡이야말로 애통함과 서러움, 

지극한 슬픔과 눈물의 정수(精髓).

 

9

아다지오에서

음표들은,

그리고 당연하게도 쉼표들은

영원을 향한다.

 

다른 시간다른 공간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초월적인 힘,

 

명상이거나 참선이거나, 

또는 삶과 죽음의 이치에 대한 

궁극의 깨달음과도 같은.

 

10

베토벤이 1825년에서 1826년 사이, 

세상을 떠나기 한두 해 전에 썼던

후기 현악4중주들에서

아다지오 악장들은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그의 생에 대한 사유를 담아낸 것은 아닐까. 

 

아다지오로 1악장을 시작하는

현악4중주 13번과 14번은 물론이거니와

12번 1악장의 Maestoso, 

그리고 15번 1악장의 Assai sostenuto 역시

아다지오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 고

생각해 본다.

 

11

‘월광’ 소나타의 1악장에서 보았던

Adagio sostenuto는, 

훗날 베토벤의 Bb장조의 29번째 피아노 소나타,

이른바 ‘함머클라비어’의 3악장에 다시 쓰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흔히 f#단조인 

이 소나타의 3악장을

“모든 슬픔을 아우르는 거대한 무덤”이라거나

파울 베커(Paul Bekker)의 말마따나

‘치유할 길 없는 고통과 슬픔의 절정(apotheosis)’이라고 

표현하고들 한다.**

 

12

그러나 한편으로 Apotheosis는 

고통과 슬픔의 절정이기도 하지만,

그 고통과 슬픔을 이겨낸 뒤 얻는

신성성을 이르기도 한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지금–여기’에서 벗어난 

초월적인 세계로 이끄는 것,

 

1787년 출판된 하이든의

십자가 위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곱 말씀

(Die sieben letzen Worte unseres Erlösers am Kreuze)

Adagio의 서주(Introduzione)로 시작해 

Largo와 Grave, 또다른 Adagio로 이어지는

회한과 탄식인 동시에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13

마르첼로 오보에 협주곡의 2악장이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의 Adagietto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느린 악장 

Adagio sostenuto에서처럼,

 

평온과 위안과 슬픔 그리고 탄식, 

애도와 기도와 위로,

또한 명상과 때로 영원에 이르는, 

영적인(spiritual) 고양감까지 아우르는 것이

바로 아다지오가 가진 힘

 

14

위의 수많은 아다지오 가운데 

하나만 링크한다면 단연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Bb장조, Op.106 

“함머클라비어”의 3악장이다. 

알프레트 브렌델의 연주.

https://youtu.be/0d9UAVfbp2Y?t=837

                              

 

 


그보다 낮은 음역대의 콘트라베이스는 크기 면에서도 영어의 large를 뜻하기도 하는 Largo가 어울리는 악기다. 

** 위키피디아 문서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Piano_Sonata_No._29_(Beetho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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