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슈나이더, “슈만, 내면의 풍경La tombée du jour”, 김남주 옮김, 서울:그책, 2015 [본문으로]
이상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슈만에 대한 비판. 프랑수아 누델만, “건반 위의 철학자”, 이미연 옮김, 서울:시간의흐름, 2018. p.194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당연히 Eb장조는 ‘사냥’의 조성이다. 왕족과 귀족들에게 헌정된 수많은 사냥 음악들도 그러하거니와, 고전시대 이후 이 조성은 트럼펫과 호른의, 눈부신 금관의 조성이 아니던가. [본문으로]
“Meanwhile, Schumann experimented with alter native titles and collected relevant verses from sylvan poems by contemporaries – Joseph von Eichendorff, Friedrich Hebbel, Heinrich Laube, and Gustave Pfarrius – for possible use as mottos” [본문으로]
Eb장조를 베토벤의 “에로이카”, 혹은 피아노 협주곡 “황제”와 어찌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본문으로]
프랑수아 누델만, 건반 위의 철학자, 이미연 옮김, 서울:시간의흐름, 2018. p.191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