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幻滅)과 환멸(還滅) 사이.


生心, 

마음이 무성하여

길을 찾을 수 없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二律背反, 

앎과 행동의 불일치. 


오늘 내려마신 원두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water footprint

생두를 키우고 씻어내기 위해

물부족 국가에서 낭비된 물을 생각한다면, 


과연 내 삶의 욕망을 줄이는 것이 

가능할까 싶다. 


당신이 만약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다면, 

그래서 무언가 실천방법들을 찾고 있다면, 



단 하나의 단어만 기억하면 된다: 


줄여라(Reduce)!



우리는 지나치게 많이 소유하며, 

지나치게 많이 생산한다.

우리가 타고, 먹고, 태우고, 버리고, 

사고, 갖고, 씻고, 닦고, 입는 모든 것을 줄이지 않는 한,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멈출 수 없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허구다.  

‘성장’이 목표에 포함되는 한, 

지속과 공존은 가능하지 않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회에서

부도덕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방식은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매일같이 모멸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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