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너무 가깝다. 

언제나 너무 가깝다. 

전철에서 지나치게 몸을 밀착하는 

기분 나쁜 남자처럼 가깝다. 

— 정세랑, “피프티 피플”


대저 이 정도 나이쯤 되면


삶의 깊은 뜻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동안의 인생이 별 볼 일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리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마련이다. 

아니, 이런 표현이 너무 추상적이라면, 


이제까지보다 

즐거운 일은 더 적을 것이며

고통스럽거나 슬프거나, 

아프거나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야 하거나, 

그나마 남아있던 행복의 목록마저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는 과연 뭘까 

고민하기에는 이제 젊지 않고 

그저 시간에 이끌려 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해야 할까. 

텅                                  비





                                  

  



내 

안의 

이야기들이

욕망들이

모두

증발해

버렸

내가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두려움은 이성보다 훨씬 강력하며

익히 알려진대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고 깨달아야 할 것은

두려움 역시 합리적 판단의 일부이며, 

불안은 영혼의 본체라는 점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두려움을 비웃었던 이들 역시

두려움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두려워했다는 것. 


세상은 비웃음과 조롱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더 겸허해지되

동시에 더 용감하고 대담해져야 한다.


그것이 2016 미국 대선에서 

내가 얻은 교훈이다. 


어떤 길이든 끝은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순간에,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그 길을 걷지 않을 

충분한 이유나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계속 걷는 한 

어떤 길이든 끝은 있다는 것, 


설령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다 하더라도 

멈추지 말고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은 길의 끝이 아니라 우리가 걷는 

바로 그 길 위에 있는 것이므로


아주 먼 길 

지고 온 짐이라도 된다는 듯 

털썩, 

남자는 몸뚱이를 부려 놓는다 
다시 들고 갈 일은 없다는 듯이 

낟알 따위 
터진 자루 틈으로 
흘러나가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生이기에
주위의 生도 순간,

들썩거린다


2016년 10월의 어느날
지하철 小景


불혹은 무슨, 


창밖 이는 바람소리에 

마음이 출렁, 

혹은 철렁

아침 공기가 차다

오르골처

소름이 오른다


어루만지면 

 하늘처럼 

맑은 소리라도 울릴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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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로 책을 읽을 때의 장점은

문장을 한번씩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는 것. 


하지만 그 문장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단점이다,


나이가 들면서

일일이 기억하는 것이 

그리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됐기에

큰 문제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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