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커피는 유명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맛이란 생각보다 보편적이다. 


어디선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首位를 차지했다는 얘길 본 적이 있는데, 

그럴 만한 맛과 향이다. 

꽃과 과일 향기, 산뜻한 바디감, 

그리고 뒷맛의 상쾌함까지, 

참 많은 걸 갖춘 좋은 원두다. 


허니 프로세스란, 

원두를 보통 과육을 벗겨낸 뒤 물로 씻는데

이 가운데 세척과정을 생략하고 건조시키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과육의 맛이 좀 남게 돼 

단맛이 좀 더 강해진다. 


물로 씻는 과정을 생략하고 

천일건조, 즉 햇볕에만 건조시키니 조금이나마

환경에 더 친화적인 생산 방법이라고 하며,  

따라서 값은 약간 더 비싸게 마련이다. 


맛있다. 

향기도 좋다. 

다만 뒷맛이 너무 순식간에 사라져버려

방금 내가 뭘 마신 건가, 마시긴 마신 건가 싶다. 

커피를 목으로 넘긴 후에도 

입 안에 은은히 남아있는 향기와 뒷맛을 즐긴다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좀 심심한 뒷맛. 

그래서일까, 

아이스로 드립하는 게 더 맛있다,

아이스는 어차피 깔끔하게 먹는 거니까. 


과테말라나 첼바가 매일 먹는 집밥의 느낌이라면, 

근사한 곳에서 실력있는 셰프가 차려준 

정찬(正餐)의 느낌. 

언젠가는 다시 가고 싶지만, 

매일매일 그렇게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맛. 


역시 과테말라, 케냐, 브라질처럼 ‘흔한’ 커피는

흔한 대로 또 그만의 매력이 가득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커피. 







인류의 문명은, 특히 근대 이후의 문명은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갖는 걸 목표로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그렇게 제곱의 경제학, 

기하급수적인 기술발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지구는 한계가 있고, 엔트로피의 법칙은 피해갈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가진 이들의 논리적인 귀결은, 

덜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 더 갖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1% 대 99%의 불평등을 낳은 원인이다. 


그렇다면 이것의 해법은 다른 것이 없다. 

더 많은 사람이 조금씩 덜 갖는 것.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내려놓는 것. 

그래서 조금씩 덜 먹고, 덜 쓰고, 덜 갖고, 덜 버리며, 


무엇보다 

이 지구에게 덜 부담을 주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은 꿈이다. 


능력에 부치면 

놓아버리는 것이 맞다.

 


실인즉슨, 
해금에서는 물 냄새가 난다. 
이건 몸살 앓는 소리라고, 
輾轉反側, 
풀잎이 바람에 몸 뒤척이는 소리라고.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비에 젖은 해금이라니!

왠지 짠내 나던 그 물기가
후두둑, 
내리는 빗방울에 씻기지 않겠느냐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해보니

절실하게 원해 본 적이 없다. 

이제라도 뭔가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내 인생은 낙제를 면치 못할 듯하다. 

 늘 그렇듯

위기를 견뎌내는 것은,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는 것은 

사회적 강자다. 

위기는 약자를 제물로 

강자의 배를 채운다. 


그러므로 위기는 

강자들의 잘못이나 실수로 초래된 

어떤 결과가 아니라, 

강자들이 더 강해지고 싶어서 저지르는,

약자에 대해 배타적이고 의도적인 

계략, 혹은 술수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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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유효기간은 늘 그 최선을 다 하는 순간이다.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최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욕심 부리지 말고, 

멀리 바라보되 이 순간에 최선을 다 할 것.  

헤밍웨이와 쿠바, 그리고 커피. 

뭔가 ‘하드보일드’스럽다고 생각했다면, 

대략 비슷하다. 


첫 모금부터 훅, 치고 올라오는 흙냄새와 

마치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알싸함까지, 

지금까지 마셔본 어느 커피와도 닮지 않은 맛.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맛보아야 할’ 같은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나,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이 쿠바 크리스탈 마운틴 앞에서라면 

그런 시니컬한 태도는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다. 


흙냄새 뒤로 짧게 올라오는 신 맛이 뒷끝 없이, 

깔끔하게 잡맛을 없애주어 

입 안에 ‘맛’이 아닌 ‘향기’만 남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서서히 향이 엷어진 뒤에도 

입 안이 상쾌한 것이 특징. 


케냐 원두 값의 2배 정도니

(혹 더 비싸게 파는 곳도 있겠지만)

꽤 비싼 커피이나, 

직접 내려먹는다면 

큰 부담까지는 아니라 생각한다. 


원두 색도 그렇고 갈아 나온 것도 그렇고, 

다른 원두보다는 상당히 밝은 갈색을 띄는데

이게 로스팅의 차이만은 아닌 듯 하다. 

그렇다보니 드립을 해보면 좀 묽어보이게 마련.  

실제로 개성은 강하지만 맛 자체는 부드러운 편이어서

좀 강하게 내려도 부담스럽지 않을 듯 하다. 


첫 잔은 좀 연하게 내렸으나, 

식을수록 알싸함은 덜하지만 산미가 올라와서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로스팅한 지 나흘째 되는 원두를 사왔는데, 

보통 사흘째에서 이레째 정도가 가장 맛이 좋을 때라는 설명. 


모카포트는 나중에 시도해보고 추가하기로 한다.  




Life; what an effing slow process of 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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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꽂힌 억지 슬픔들의 목록,


나는 여전히 


슬픔 앞에서 어떤 말이 가능한 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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