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러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  

즐거운 일이 있으면 

커피에 크림을 타서 마시면 그만이다. 

 슬픈 일이 있으면 커피를 블랙으로 마시면 된다. 

 세상은 그래도 돌아간다.


- 투오마스 퀴뢰, “괴짜노인 그럼프”, p.23 & p.61


겸허해야 마땅하다


대단한 맛은 아니라도

허기를 달래기에는 충분한

메밀 전병 앞에서 


그것을 구워내기 위해 폭염경보, 

36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아스팔트 옆 천막 가판대에서 


불 앞에 서야 하는

그 뜨거운 수고로움 앞에서


그렇게 신성한 노동을 수반하는 모든, 

우리가 일용할 양식 앞에서





#염창역_4번출구_계단아래_메밀전병집


You must understand, young Hobbit, 

it takes a long time to say anything in Old Entish. 
And we never say anything 
unless it is worth taking a long time to say.

– Treebeard from The Lord of the Rings: The Two Towers
 


말에 관한 한 

신속함은

경솔함의 동의어다.


말이란 毒과 같아서, 

그로 인해 누가 다치지 않을 때까지

묵히고 삭혀서 꺼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침묵이 나을 수밖에. 

(혹은 그렇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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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 새콤함, 구수함, 모든 기본을 다 갖춘 훌륭한 커피. 

다만 그리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품종은 아니라는데, 

단골 커피 (볶는) 집 사장님의 분석으로는

“이름에 ‘시다’가 들어가서 신맛이 강한 줄 알고 싫어하는 듯” 하다고. 

물론 우스개 소리겠지만. 


신맛을 강하게 볶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 

개인의 취향 내지는 입맛 차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고, 

다만 신맛이 잘 안 난다고 하여 

굳이 내 입맛이 이상한가,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바디감이 묵직하며, 첫 모금에 혀가 짜릿하다. 

좀 일반화시키자면 

에티오피아産스럽게 꽃향기를 비롯해 향미도 풍부한 편. 


따뜻하게나 차게나 다 좋으며, 

진하게 내려먹어도, 좀 굵게 갈아 가볍게 먹어도 좋다. 


같은 에티오피아의 첼바가 좀 더 대중적으로 

한번에 반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 반면, 

시다모는 좀 꾸준히 먹어야 그 매력이 비로소 빛난다. 


‘커피’의 이데아와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 

‘커피’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여러가지 맛이 골고루 갖춰진 품종인 듯. 

 







믿을만한 백과사전 하나 없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씌어지는 글이란

하나마나 한 소리이거나 아니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엉터리일 수밖에.


그리고 매일 같이 엉터리들의 무더기에 

한 줌 씩 보태고 있는 이 죄를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모르는 사람이 쓰고,

모르는 사람이 감수하고, 

모르는 사람이 읽고, 

그렇게 세상은 돌고, 

돌고, 

돌고,





天下無人

천하에 남이란 없다

– 묵자

재미도 의미도 없는 것을

다들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걸까. 

이렇게 의무로 버티다 

허무로 끝나는 것을.


민주주의의 형식이 안전하게 고려될 때는 
민중이 참여할 위험성이 극복되었을 때뿐이다. 
–  노엄 촘스키


If there is any principle of the Constitution 

 that more imperatively calls for attachment than any other, 
 it is the principle of free thought, 
 not free thought for those who agree with us 
 but freedom for the thought that we hate. 
— Oliver Wendell Holmes Jr.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 의견이 그릇된 것일 수는 없다.


문제는 특정한 의견에 대한 

어떤 개인의 동의와 지지 여부가 아니라, 

그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하여  

불이익을 당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에 대한 

반대요, 거부다.


그러므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불손’하고 ‘불편’한 언어와 방법들을 취했다는 이유로  

(과연 누구에 대한 불손이며 누가 불편해 하는가?)

그들을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반대하고 거부해야 한다.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노라면

더이상 다음 세대를 걱정할 게 아니라

내 생전에 인류 멸망을 보게 되지나 않을 지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하기는

북극의 얼음이 다 녹는 것보다

인류가 먼저 사라지는 게 

더 나은 일일테니

뭐 그리 호들갑 떨 일도 아니고 

그다지 안타까울 것도 없지만,


다른 건 몰라도

베토벤과 

찰스 밍거스도 사라진다는 건 


아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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