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地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而奉有餘

– 道德經, 七十七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 모자라는 것을 채우나

사람의 도는 그와 같지 않아

모자라는 것을 덜어 남는 것을 떠받든다 




불합리한 제도는 고치는 게 마땅하나, 


더우니까 더 쓰고 더 써서 더 더워지는,

에너지의 소비와 탄소량 증가라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 듯 하다. 


모두가 마음 편히, 마음껏 쓸 수 있게만 되면 

과연 괜찮은 걸까.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비올렌느 꼬샤르와

우리나라에도 몇 번 다녀갔다는 

재즈 피아니스트 에두아르 페를레가 연출하는

재즈와 클래식의 세련된 뒤얽힘. 


현을 ‘뜯는(plucking)’ 하프시코드와 

현을 해머(hammer)로 ‘때리는’, 

그래서 ‘뜯지 않는(un-plucking)’ 피아노의 만남.

건반악기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소리를 내는 방식도 다르고 조율도 완전히 같지는 않아서, 

사실 두 악기가 모종의 관계는 있지만 

직접적인 혈연관계는 아니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세기 후반 들어 하프시코드가 ‘재발견’되어

옛날 케케묵은 악기라는 오명도 떨쳐냈고, 

오히려 이 악기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마치 신서사이저에서 나오는 소리로 오인할 만하니  

바로크 시대의 악기가 모던 내지는 

포스트 모던과도 통하는 바가 있을 터. 


사실 하프시코드와 피아노의 협연, 

이런 전례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두 악기가 빚어내는 소리의 조합이

(솔직히 말하자면 예상과는 다르게)

꽤 상큼하고 발랄하며 깊이 있다. 


현대음악의 하나로 들릴 법한,

바흐의 음악에 대한 재해석도 

틀에 박히지 않아 매력적. 



Violaine Clochard & Edouard Ferlet

Johann Sebastian Bach: Plucked / Unplucked

Alphaclassics, 2016 (ALPHA 229)


I don’t believe that there is an ecological crisis; 

I believe that there is a crisis of governance. 
–  Jose Mujica

from an interview with Economist






덥다. 

몹시 덥다. 


그런데 이 더위에

공장형 축사에 밀집 수용된 

동물들은 정말 

저대로 괜찮은 걸까.


좁다. 

너무 좁다. 

더군다나, 


 덥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괜찮지 않다. 




Well I run to the rock, please hide me 

...
 So I run to the river, it was bleeding’ 
...

 I run to the sea, it was boiling’



내게 박수소리가 박수가 아닌 

저 중세의 채찍질 고행자(flagellants)들의 

채찍 소리로 들리는 것은

아마도 죄가 많아서일테다. 


그날 이후로 때때로 묻는다, 

내가 그 배에 있었다면

나는 아이들을 구하는 쪽이었을까

아니면 내 한 몸 먼저 도망치는 쪽이었을까. 


나는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곳, 손길이 필요한 사람, 

길이 필요한 것들에게서 

자꾸만 도망쳤다, 


도망쳐도 어디로도 갈 곳이 없는데. 



So I ran to the devil, he was waitin’

I ran to the devil, he was waitin’

Ran to the devil, he was waitin’ 

All on that day I cried...

 


나는 과연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더이상 묻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진짜 답을 얻고 싶다면 

“나는 과연 얼마나, 어떻게 나쁜가”라고

질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스웨덴의 작곡가 헨닝 만켈. 

주로 피아노 작품들을 남겼고, 

프랑스 인상주의에서 영향을 받았다, 고

아주 간략한 정보만을 찾을 수 있었다. 


‘엄청난 대작’이거나 ‘필청’이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지만, 

생상스나 그리그의 시대와 

희미하게나마 쇼스타코비치 또는 

프로코피예프 사이의 어디 쯤 놓일, 

한번쯤 들어봐도 좋을 20세기초의 근대음악. 



월요일 아침 누군가의 오타, 


좁.은.아.침.


하루하루 삶은 점점 좁아지고, 

내게 허락된 여유와 공간도 좁아지고, 


그래도 다만 다행인 것은 

당신과 나 사이도 좁은아침 만큼

아주 조금,









Seasons march from Pina (2011)


봄에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겨울에는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나뭇가지가 툭툭 부러진다. 
가을의 나뭇잎은 울긋불긋해졌다가 
순식간에 떨어져 삭아버린다.
- 투오마스 퀴뢰, “괴짜노인 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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