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브런치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

 

https://youtu.be/ZRZjHKX-JMA

로베르트 슈만, ⟨환상곡⟩ C장조, Op.17 | 손열음 연주

 

1

1836년 처음 씌어져 1839년 출판된

로베르트 슈만의 ⟨환상곡⟩은 

클라라 비크와 서로 떨어져 지내야 했던,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방해로

서신조차 주고받기 힘들었던 시절 

그녀에게 바치는 음악으로 쓴 연서(戀書), 

 

아직은 그들의 사랑이

아버지와의 다툼과 절연을 포함해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것도,

그럼에도 4년 뒤 법원의 허가를 얻어

마침내 결혼하게 되리라는 사실도, 

그리고 그다지 길지는 못했던 행복과

그 모든 불운과 비극과 고난, 

영광과 기쁨을 알지 못하던, 

심지어 서로에 대한 진실한 마음조차도

견고하지 못했던 시절에, 

 

이토록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이 담긴. 

 

2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실로 아찔한 일이다. 

영혼은 물론이거니와 

온몸의 솜털 하나하나, 

심장과 핏줄, 몸 안의 모든 것까지, 

이를테면 창자(‘애’)까지 휘젓고 흔들며 

뒤집어놓곤 하여,

 

우리는 애가 타고, 애끊으며, 

애를 끓이고 애가 다는, 

때로는 애간장이 녹는 듯 하다가 

종종 애닯고 심심찮게 애를 먹고 

그만큼 애를 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랑에,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며 

종종 불확실하고 모호하기 마련인 

사랑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애틋함’이 아닐까.

 

‘섭섭하고 안타까워 애가 타는 듯하다’와

‘정답고 알뜰한 맛이 있다’는,

서로 상충하는 듯한 사전적 정의처럼

마음을 간질이고 때로 시리도록 저미는, 

그러는 동안 깊숙이 스며들어 

이윽고 물리칠 수 없는 그런 사랑, 

 

그리고, 

음악. 

 

 3

1악장 Durchaus fantastisch und

leidenschaftlich vorzutragen

(매우 환상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은

클라라의 이름을 부르는

슈만의 애타는 그리움으로 시작한다.

 

왼손이 도약과 하강을 반복하며

마치 폭포수 같은 음들을 쏟아내는,

딸림9화음(G9)으로 보이는 16분음표 

분산화음으로 문을 열고, 

오른손으로 점4분음표와 8분음표의 

A(라) 옥타브 화음에 이어

2분음표의 A-C-D-A 화음을 연주하며

시작되는 제1주제는 

(C)-A-A, 다시 말해 C-라-라(C-la-ra),

클라라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1악장 도입부 클라라의 동기 (악보출처:  http://imslp.org)

 

이어서 이른바 ‘클라라의 동기’로 

슈만이 여러 작품에서 변형해 사용한

A에서 D까지 5도 순차 하행하는 음형은

C장조라는 조성에도 불구하고

언뜻 A 자연단음계처럼 느껴지는데,

더구나 으뜸음인 C는 오른손에서

내성부에 숨어 들릴 듯 말 듯 하며 

왼손의 분산화음 역시 으뜸화음을 피해

조성감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 모호함은 1악장 내내 

때로 해결이 지연되거나

해결이 되더라도 된 듯 아닌 듯 싶게

해결하는 형태로 지속된다.

마치 사랑할 때의 그 모든 설렘과 떨림 

그리고 간절함, 망설임과 초조, 

기대와 실망, 열정, 갈망, 의심과 자책,

안타까움과 오해와 잠깐의 확신, 

그리움과 두려움과 같은 혼란한 감정들, 

미래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함과도 같이.

 

 77~81마디 아다지오를 지나

In tempo로 넘어가는 부분의 

페르마타가 붙은 쉼표는 마치

말로 표현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의, 

침묵의 심연과도 같이 숨막히게 하며

이윽고 터져나오는,  

감출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감정의 봇물.

(악절들이 넘어갈 때마다 붙은

페르마타는 곡을 한층 더 드라마틱하게, 

‘환상적이고 열정적’이게 만든다.)

 

1악장 아다지오 부분의 페르마타와 이어지는 당김음 리듬 음형 (악보출처:  http://imslp.org)

 

이어지는 악절에서 선명하게 들리는

16분음표+8분음표의 당김음 리듬(타단—)은

마치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듯, 

불확실한 미래에 맞서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 듯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며 반복되고,

 

코다에서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베토벤의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 Op.98 가운데

마지막 6번째 곡의 도입부

“Nimm sie hin denn, diese Lieder”

(그러니 그대, 이 노래들을 받아주소서)를

살짝 변형해 인용한다.

(슈만은 교향곡 2번 C장조, Op.61과

현악4중주 Op.41/2에서도 사용했다.)

 

1악장 코다의 베토벤 가곡 인용 부분 (악보출처:  http://imslp.org)

 

베토벤의 연가곡 ⟪멀리있는 연인에게⟫ 중 제6곡 도입부 (악보출처:  http://imslp.org)
슈만 교향곡 2번 C장조, Op.61의 4악장, 베토벤 인용 부분 (악보출처:  http://imslp.org)

 

이어 사랑을 간구(懇求)하는 기도처럼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와도 같은 화음에 이어,

마침내 슈만이 모토로 인용한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시구처럼

‘조용히 여운을 남기며 사라지는 음’처럼

(Ein leiser Ton gezogen)

아련하게, 곡이 마무리된다. 

 

로베르트 슈만은 1838년 

클라라에게 쓴 편지에서 1악장에 대해

그때까지 자신이 지은 것 중 

‘가장 열정적인 곡’이라고 쓴다. 

악상기호로 쓰인 ‘leidenschaftlich’가 아닌

‘고통을 겪다’는 라틴어 patior에 기원을 둔 

‘(mein) Passionirtestes’를 사용한 것은

(독일어 위키피디아 원어로 인용돼 있다),

Passion이 예수의 ‘수난’과 

그것을 다룬 음악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슈만스러운 선택이 아닐까. 

 

4

2악장 Mässig, durchaus energisch

(적절한 속도로, 매우 활기차게)는

Eb장조의 축제풍의 행진곡으로 시작한다.

 

1악장에서의 모든 모호함이,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고뇌로 찬, 

불안과 확신 사이에서 떠돌던 음표들이

마침내 2악장에서 와서야

시원하고 말끔하게 해소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떤 면에서는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지켜낸 사랑의 결실을 나타내는 것도 같고 

혹은 좀 더 통속적인 상상을 발휘하자면,

일종의 결혼행진곡처럼도 느껴진다. 

 

2악장은 기교적으로도 난곡으로 손꼽히는데, 

리듬이나 화성의 대담함, 

음향적 효과를 위한 여러 표현도 그렇거니와

특히 양손이 폭풍우가 몰아치듯

(아래 악보의 Viel bewegter) 

매우 빠른 속도로 반대 방향으로 

크게 도약하며 대단원에 이르는 코다는

이어지는 3악장의 마치 기도와도 같은

고요함과 순수함에 대비되면서

한층 더 효과적인 결말로 이끄는데, 

당대의 피아니스트 중에는 

아마도 리스트 외에 연주할 만한 이가 

거의 없다고 여겨졌다 전해진다.

 

2악장의 스트레타(Stretta) 부분 (악보출처:  http://imslp.org)

 

이 곡을 헌정받은 리스트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슈만 앞에서 개인적으로 연주했고,  

슈만은 특히 이 코다 부분을 듣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글썽이고 끌어안으며 

‘신이 내린 솜씨(Göttlich!)’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스트는 이 작품이

대중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렵다 생각해

공개적인 연주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답으로 1854년에 

그의 b단조 소나타를 슈만에게 헌정한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부연하자면

리스트는 자신의 b단조 소나타 역시 

대중 공연에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했으며,

슈만 부부 역시 슈만의 피아노 작품 대다수가

시대에 앞선 것이라 생각했다.

(클라라가 이 곡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연주한 것은

로베르트의 사후인 1866년이다.)

 

5

3악장 Langsam getragen. 

Durchweg leise zu halten

(느리고 경건하게, 고요와 평온 잃지 않고)

 

3악장 도입부의 왼손 아르페지오에서

나도 모르게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것은,

슈베르트 곡의 전주 분산화음이

조금 닮았다는 느낌 탓일 수도 있고,

슈만이 1840년에 작곡(& 출판)해

클라라에게 헌정하고 결혼선물로 준

가곡집 ⟪Myrthen⟫, Op.25의 

첫번째 노래 ⟨Widmung(헌정)⟩ 말미에

⟨아베 마리아⟩를 인용한 탓도 있을 테지만, 

 

이 3악장의 기도와 같은, 혹은 

나직한 속삭임이거나 천상의 축복과도 같은 

고요함과 평온함, 신비로움과

환상적인 아름다움이야말로,

슈만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천상에서나 가능했을 법한’ 

슈베르트의 음악과

닮았다면 닮은 데가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지극한 사랑이란

어쩌면 궁극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때로 맑은 날도 또 흐린 날도 있겠으나, 

평정과 평온을 유지한 채 

사랑의 온유함을, 서로에 대한 믿음을 

소란스럽거나 요란하지 않게 

지켜나가는 것. 

 

클라라 슈만이 1840년 4월에 쓴 

일기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그와 함께 있을 때가 늘 

가장 편안하고 좋다. 

그는 말이 거의 없다. [...]

그가 나의 손을 지그시 잡을 때,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그의 하나뿐인 연인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낸시 B. 라이히, “클라라 슈만 평전”, 

강자연・하인혜 옮김,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9)

 

그러나 그런 사랑을 지켜내는 것은, 

 사랑이 변치 않는 것은, 

혹은 조금은 변할 수밖에 없더라도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잃지 않기란

얼마나 힘든 일이던가. 

그러므로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기도와 기원의 형식만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3악장 악상기호의 ‘getragen’은 

종종 무시되어 번역상 생략되거나

혹은 동사 tragen(가져가다, 나르다)의 

과거분사로만 취급되는 경우가 많지만, 

음악이나 목소리 등을 수식할 때 

영어의 solemn(장엄한, 엄숙한, 경건한)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쩌면 슈만이 이 단어를 택한 것은

경건한 사랑의 서약과도 같은

이 곡의 분위기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leise’ 역시 조용함보다는

평온함, 차분함 등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해 보여 내 멋대로, 

‘느리고 경건하게, 고요와 평온을 잃지 않고’ 

정도로 옮겨 본다. 

 

다섯째 마디에서 왼손이 

앞서 언급한 ‘클라라의 동기’를 연주하며

오른손이 제1주제를 제시하고, 

이어 조금 먼 조성인 

Ab장조의 제2주제가 나온 뒤

발전적으로 전개되기는 하지만 

조금 느슨한 소나타 형식이어서,

악상의 전개는 꿈을 꾸듯

⟨환상곡⟩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자유롭게 흘러간다. 

 

오히려 악장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느낌이 들게끔 하는 것은

악절이 넘어갈 때마다 변형되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서주에서의 왼손 분산화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악곡의 흐름이 정처없이 

부유하는 느낌도 동시에 선사한다.

 

종결부에서도 다시 분산화음이 펼쳐지다 

3개의 으뜸 화음으로 

간결하고 담담하게 마무리된다, 

마치 나직하지만 확고한 다짐처럼,

잔잔하지만 단단한 사랑처럼.

 

3악장의 종지 (악보출처:  http://imslp.org)

그러나 이제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덕분에)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원래는 3악장의 엔딩이 달랐음을 안다.

 

슈만의 필사가였던 카를 브뤼크너가 필사한

현존하는 필사 악보 따르면, 

슈만은 원래 1악장 코다에 쓰였던 악구를

그대로 3악장의 코다로 다시 사용했으나, 

출판되기 전 수정 과정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엔딩으로 대체된다. 

 

“그러니 그대, 이 노래들을 받아주소서”, 

다시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그가 보내는 그리움의 음표들을 상징하는 

악구로 끝낸다는 점에서 

훨씬 더 애틋한 결말이지만, 

슈만은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더 단순하고 간결한 종지를 택한다.

 (3악장 코다에 대한 내용은 

헨레(Henle) 출판사의 온라인 게시물 참조.

해당 부분 악보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왜 코다를 이렇게 바꿨는가, 

슈만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는

아마도 우리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슈만의 의지, 그러니까 출판본부터는

현재 익히 알려진 간명한 코다를 

선택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간혹 인터넷에서 베토벤을 인용한 코다가 

‘초판본’이라고 잘못 설명하곤 하는데, 

슈만은 초판 출판 이전에 코다를 수정했고

출판은 초판본부터 위 악보의 코다였으니

어떤 것이 더 정확한 작곡가의 뜻인지, 

그리고 작곡가의 뜻에 따라 연주할 때

어떤 코다가 적절한 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손열음은 음반에서도, 리사이틀에서도

수정 전의 코다를 택했고, 

안드라스 쉬프도 그의 음반에

원래의 코다 연주와 함께 이 교정 필사본의

베토벤 인용 코다를 함께 녹음했으니, 

이 애틋함으로 가득한 색다른 매력을

굳이 거부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Henle 출판사의 다른 게시글 참조.)

 

6

어쩌면 음악에 대한 글인데

너무 사랑이라는 비음악적인 개념으로

서술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러나 슈만의 음악을 어떻게

사랑을 떠올리지 않고 말할 수 있겠는가,

특히 이렇게나 명백하게 사랑의 열정과, 

환희와, 영원한 사랑의 꿈을 담은

⟨환상곡⟩에 대해서는 더욱 더.

(물론 이 곡 전체를 음악적으로 분석하기엔

내 지식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하지만 잘 알려져있다시피, 

이 곡은 클라라에 대한 연모(戀慕)인 동시에

루트비히 판 베토벤에 대한 흠모(欽慕).

 

슈만이 애초에 출판사들에 제안한 제목은

⟨Obolen auf Beethovens Monument:

Ruinen, Trophäen, Palmen:

grosse Sonate für das Pianoforte

 für Beethovens Denkmal,

von Florestan und Eusebius⟩, 

우리 말로는 대략

⟨베토벤 기념상에 바치는 작은 헌정:

플로레스탄과 에우제비우스가 쓴

베토벤 기념상을 위한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대 소나타⟩로,

플로레스탄과 에우제비우스는 

슈만의 예술적 페르소나,

Ruinen(폐허), Trophäen(승리기념물),

Palmen(종려나무 잎(의 영광))은 

각 악장에 붙은 부제였으며, 

나중에 Ruinen, 

Triumphal Arch(개선의 아치(개선문)), 

Contellation(성좌(星座;별자리))으로 바뀐다. 

 

당시 음악계에서 추진 중이던 

베토벤 기념상 건립 기금 마련에 

힘을 보태기 위한 것이었으나 

두 곳의 출판사로부터는 출판을 거절당하고, 

1839년 브라이트코프&헤르텔 사에서

이 모든 제목과 부제가 삭제되고

현재 알려진 바와 같이 ⟨환상곡⟩으로, 

각 악장에도 부제 없이 

악상기호만 표기된 채 출판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제목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작품을 듣다보면

언뜻 언뜻 베토벤이 썼을 법한

음악적 표현들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작품을 베토벤에 대한 헌정으로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이 볼 수도 있겠다.

 

1악장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비교적 초기작인 Op.27로 출판된

환상곡 풍(Quasi una fantasia)의 

두 곡의 소나타를 떠오르게 하고

(Op.27-2  유명한 ‘월광’),

 

2악장은 아마도 같은 C장조인

피아노 소나타 21번 Op.53 ‘발트슈타인’이나

소나타 29번 Bb장조, Op.106 

‘함머클라비어를 위한 대소나타’를

(실제로 ⟨환상곡⟩의 오케스트라에 가까운

피아노의 음향적 효과를

‘함머클라비어’와 비교하는 평자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3악장은 

베토벤의 가장 마지막 소나타들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하면 흥미롭지 않을까. 

 

특히 소나타 30번 E장조, Op.109의

기존 소나타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흐름, 

그리고 31번 Ab장조, Op.110의 3악장이나,

혹은 지상에서의 고뇌로부터 

천상의 지복(至福)으로의 상승과도 같은

c단조의 마지막 소나타, Op.111을 생각하면,

영원하고 지고한 사랑을 노래한, 

혹은 종려나무 잎이나 하늘의 별자리에

어울릴 법한 영광스러움을 노래한

슈만의 ⟨환상곡⟩ 3악장과 사뭇 닮았다.

 

7

이 곡을 나름 좋아한 것은 오래되었으나, 

‘애정하게’ 된 것은 서두에 링크한

손열음의 연주 덕분이었다. 

그의 연주는 참으로 애틋한 해석이어서, 

1악장의 페르마타 처리도 눈에 띄게 길고

(정말 숨막힐 듯한 페르마타!),

앞서 언급했듯이 3악장의 코다도

베토벤 인용구를 포함한 코다로 연주한다.  

누군가 이 곡을 새로 알고 싶거나 

아니면 알고있던 것을 새롭게 하고 싶다면 

손열음의 음반으로 시작해도 좋겠다. 

이 곡의 유일무이한 절대적 해석은 

아닐 지도 모르겠으나,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애틋한 연주라고 생각한다.

 

아쉬케나지의 연주는 열정과 고아함이

매우 적절하게 균형을 갖추고 있으며,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기품있는 연주는

특히나 3악장에서 빛난다. 

 

https://youtu.be/Ve3yewPoGfU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1959년 베를린 실황 연주
 

 

미츠코 우치다의 연주는

그녀가 이런 연주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격정적이다.

우치다나 손열음의 연주를 듣다보면,

이 곡이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라는 건

단순히 기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절절하고 강렬한 감정으로 가득한 

30분 남짓의 시간을 채워나가는 것은, 

연주자에게 신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매우 벅차고 진이 빠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음반으로 들었던 

리흐테르, 폴리니, 알리시아 데 라로차, 

조너선 비스와 브렌델 모두 

제각기 매력이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아니 피셔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훌륭한 연주도

찾을 수 있으니, 

어느 연주를 선택해 들어도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https://youtu.be/77m5DlCJ6wk

아니 피셔(Annie Fischer)의 연주
 

 

오늘 나는

부디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살아서 죗값을 치르지 않은 자

죽어서라도 영원히 고통받기를,

부디

 

 

듣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동경하도록, 상상하도록,

꿈을 꾸도록 만들지만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욕망하도록 만든다. 

이 글은 2021. 9. 22

브런치에 포스팅하기 위해 수정되었습니다.

*

 

https://youtu.be/cMo-WXxcOUw

 

1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의 새 앨범, 

<Mozart Momentum 1785>에서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c단조” K.475를 듣다가

문득 생각한다.

 

아, 이렇게나 진지한, 

심오한 모차르트의 음악이라니.

 

모차르트의 음악은

대개 쾌활하고 명료하며 

아름답고 우아하거나, 

때로 슬프고 애잔하고 

혹은 거룩하고 장엄하거나 

아니면 웅장할 수는 있어도,

 

그의 작품들을

‘심오함’과 결부시키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3

부분적으로는 

여러 일화나 편지에서 보여진

그의 독특한 유머 감각 탓일 수도, 

혹은 대중문화에서 그려낸

조금은 ‘철없고 경박한’ 천재라는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의 시대는 아직 음악에,

그리고 음악가에게 

‘심오함’을 요구한 시대가 아니었다. 

 

사실 심오함이란,

‘작곡가의 고뇌가 담긴 심오한

예술적 선언’이라는

음악작품에 대한 평가는,

베토벤과 E.T.A. 호프만, 

그리고 낭만주의가 무르익고서야 비로소 

음악에 부여되는 특성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스네스의 환상곡 연주에서 느끼는, 

마치 낭만주의 음악을 예감케하는

이 ‘심오’하다는 느낌은 

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4

다시 처음부터 들어본다, 

 

서서히 상승하다 뚝 떨어지는

옥타브 간격의 3화음으로 쌓은 뒤, 

장중한 펼침화음으로 시작하는 

6마디의 오프닝은 

마치 베토벤이 썼다 해도 믿을 법하다. 

 

특히 각 마디의 첫 음은 다섯 째 마디까지

C-B-Bb-A-Ab로 반음씩 하강하는데,

이토록 불길하며 어두운 시작이라니. 

 

더구나 첫마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c단조의 스케일에서 나온 것이 아닌, 

감7화음에서 비롯된

증4도(감5도)인 F#(Gb)을 포함하고 있어

곡의 모호한 화성감은 더 강조되는데

(5도가 추가된 감7화음의 펼침화음),

이만한 긴장감으로 시작하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또 있던가, 

내 짧은 지식으로는 알지 못한다. 

 

5

옥타브 간격으로 쌓은 3화음은 

기본적으로 음높이만 다른 같은 음들이기에

화성적 효과보다는 음향적 효과를 위해 

사용한 것이었을텐데, 

이 역시 어떤 면에서는 

베토벤의 음악을 예감케 한다. 

 

이를테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c단조, Op.13, 

이름하여 “비창” 1악장의 

오프닝을 떠올려본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 닮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네 마디의 

상승–하강의 느낌이 사뭇 비슷하지 않은가.

 

더구나 베토벤은 “비창” 2악장의 

그 유명한 첫 주제를

모차르트의 환상곡 K.475와 함께 출판된

피아노 소나타 c단조, K.457의 2악장에서

살짝 빌려와 변형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K.475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6

10번째에서 18번째 마디까지의, 

오른손 화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전개는

어떤 면에서 슈베르트를 떠올리게 하는데, 

끊임없이 망설이는 듯한,

그러나 다채롭게 변화하는 

화성의 진행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윽고 19~20번째 마디의 

왼손 아르페지오는

어쩌면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0번 

1악장의 유명한 왼손 트레몰로의

모차르트 버전이 아닐까. 

 

좀 더 무리해 보자면 

41번째 마디까지의 화성 진행과

뒤의 안단티노 부분(91-129마디)의 악상은, 

내게 슈만의 후기 작품들, 

이를테면 “유령 변주곡”과 같은 곡들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7

곡 전체의 주요 조성변화만 해도

c단조(adagio)-D장조-a단조-g단조-F장조-

f단조-Bb장조(andantino)-g단조(più allegro)-

c단조(tempo primo)로 이어지는데,

181마디의,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곡에

이처럼 다채로운 화성의 변화라니. 

(물론 이렇게 깔끔하게 화성 분석을 하기에는

내 지식이 아직 모자라기에,

위의 조바꿈 내용은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조했음을 밝혀둔다.)

 

더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악보 첫 머리에 표기하기 마련인

기본 조표가 없다는 것이다. 

 

미리 곡의 조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대신

모차르트는 각 마디마디에서 임시표를 통해

그 악구와 악절의 화성을 정의하는 셈이다.

마치 전체를 규정하는 조성이라는 장치로부터

작품을 자유롭게 하려는 것처럼. 

 

같이 묶여 출판된 

소나타 c단조 K.457에는 

조표가 표기돼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곡에서 조표를 생략한 것은

모차르트의 의도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8

그렇다. 

엄밀한 형식과 규칙으로부터의 자유, 

그것이 환상곡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 아닌가.

 

환상곡은 특정한 형식이라기보다

각 시대마다의 특정한 형식이 아닌 어떤 것들,

이를테면 리체르카레가 아닌, 

토카타가 아닌, 전주곡이 아닌, 

소나타가 아닌 어떤 것들을 일컫는, 

다소 즉흥곡의 요소를 갖고 있는, 

형식 아닌 형식. 

 

16세기에 황금기를 거친 뒤

(예를 들어 영국의 윌리엄 버드와 

 존 불의 버지널을 위한 환상곡들)

J.S.바흐와 그 아들 C.P.E. 바흐의 손에 의해 

다시 생기를 얻었으나,

 

무엇보다 환상곡 자체가,

‘Fantasie’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는 의미로 변화한 것은 

낭만주의와 더불어서 아닐까.

 

그리고 독일낭만주의의 대표자,

음악과 사랑, 그리고 그가 쓴 글

모두가 낭만주의의 체현이었던

슈만의 많은 작품이

환상곡의 형태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환상소곡집,

환상곡 C장조는 말할 것도 없고, 

‘환상’이라는 제목이 포함되지 않은 곡들에서도

환상곡의 또다른 변형들이 느껴지지 않던가. 

 

9

역설적으로 모차르트 환상곡에서

알레그로 부분은 어쩌면

우리가 익히 아는 모차르트스러운 작법이

많이 엿보인다.

 

모차르트는 곧잘 이 곡을 

즉흥연주했다 전해지는데, 

어쩌면 특히 이 부분이 

즉흥연주를 위한 부분 아니었을까.

즉흥연주란 본디 감동보다는 감탄을, 

듣는 이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한 경우가 많고, 

그래서 느린 부분보다는 빠르고 기교적인,

비르투오소적인 패시지가 더 적당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알레그로 부분은 보다 친숙하며, 

좀 더 고전적이고 단순하게 

악보로 기록한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어차피 모차르트 자신은 

알레그로를 악보대로가 아닌, 

즉흥연주로 연주해내었을테니 말이다.

 

10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이 곡을 접했다면

지금까지의 주장들에 선뜻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내 생각에)

안스네스의 해석은 새롭다.

 

이 곡이 후대의 작품들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는, 

그래서 환상곡 c단조가 베토벤스럽게 들리는, 

때로 슈베르트나 슈만이 떠오를 정도로 

과감한 연주. 

 

바로 이것이 

아무리 이름난 명곡이라고 할 지라도,

연주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새로운 연주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이 포스트는 2021.9.18

브런치에 포스팅하기 위해 수정되었습니다.

 

*

 

1

베토벤의 Op.1 

세 곡의 피아노 3중주,

 

이것은 베토벤의 ‘처음’, 

베토벤이 ‘베토벤’이기로 한 첫 걸음.

 

2

사실 이 작품들은

베토벤이 처음 쓴 것도, 

 

처음으로 출판된 작품도,

(첫 출판작품은 아마도 

“드레슬러의 행진곡 주제에 의한

9개의 변주곡 c단조”, WoO 63인 듯하다)

 

심지어 Op.1이 붙어 출판된

첫 작품도 아니다. 

(베토벤이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전해지지만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님이 춤을 추시겠다면’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초판에

Op.1이 붙은 채 출판되었고, 

출판된 이후 목록에서 삭제해

지금은 WoO.40으로 분류된다.)

 

3

그러므로 다시 정리한다,

 

리히노프스키 후작의 궁에서 초연된 후

1795년 세 곡을 묶어 출판한 베토벤의 Op.1은 

베토벤이 ‘베토벤’이 되기로 한 처음, 

 

바로 여기에서부터 

그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한

의지의 발현.

 

 4

사실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곡의 피아노 3중주는

베토벤의 작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물론 어딘가에서는 하이든스러움과,

또다른 어딘가에선 모차르트스러움이

어쩔 수 없이 묻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Op.1은

이미 충분히 ‘베토벤스러운’ 처음.

 

5

1번 Eb장조, 2번 G장조, 3번 c단조.

 

그의 세 번째 교향곡(‘영웅’)과 

다섯 번째 피아노협주곡(‘황제’)의 

Eb장조와, 

 

피아노 소나타 Op.13 ‘비창’,

피아노 협주곡 3번 Op.37,

마지막 소나타인 32번 Op.111과

나아가 교향곡 5번 Op.67 <운명>의 

바로 그 c단조,

 

이 두 개의 나란한 조 관계로 

운명적으로 얽힌 조성을 이미, 

베토벤의 Op.1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6

각각의 매력이 돋보이는

이 세 곡 중에서도, 

특히 3번 c단조는 주목할 만하다. 

 

c단조, 

베토벤 이전에는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던,

빈 고전파 시절까지는

아주 특이한 조성 취급을 받았던 조성.

 

아마도 모차르트의 c단조 대미사곡과

피아노 협주곡 24번 K.491과 같은 작품에서나

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인데,

(실제로 베토벤은 특히 후자인 

c단조 협주곡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고 전해진다)

 

베토벤은 젊은 시절부터, 

그러니까 훗날 브람스에 의해 ‘발견’되고 초연된

“황제 요제프 2세의 서거에 바치는 칸타타” 

WoO 87 (1791년)에서부터

이 글에서 다루는 Op.1-3을 비롯해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c단조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7

피아노 3중주 3번의 

1악장을 좀 더 들여다보면, 

악장의 지시어는 Allegro con brio, 

교향곡 5번 ‘운명’의 1악장의 그 지시어다.

 

C - Eb - C로 시작하는 느릿한 주제의 제시에 이어

곧바로 짧은 3연음(8분음표 스타카토)에 이은 

4분음표(+8분음표)의 음형을 확인할 수 있는데, 

1악장 내내 이 리듬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어떤 면에서는 훗날의 교향곡 5번,

이른바 ‘운명의 동기’인 따따따 따–, 를 

연상시킨다. 

 

악보 출처: http://imslp.org

 

듣기에 따라 제1주제보다도 

훨씬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 음형은, 

사실 피아노 3중주 1번의 

스케르초 악장에서도 인지할 수 있다. 

 

이 음표들이 훗날 c단조 교향곡의

그 유명한 모티프들로 연결됐을 지로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추측일테지만,

 

적어도 이 리듬이 베토벤의 작품세계에

초기부터 늘 머물러 있었고 

때로 발전하고 변형되어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고 보는 것이

지나친 억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이 음형이 사용된 또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교향곡 3번 Eb장조 ‘영웅’의 

‘장송행진곡’ 악장일 것이다.)

 

8

한때 베토벤의 스승이었던 하이든은 

Op.1으로 묶인 세 곡 중에서 특히 3번이

피아노 3중주의 전통에서 너무 벗어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고, 

그래서 베토벤의 작곡가로서의 경력에 

흠이 될 것이라 생각해 출판을 말렸다고 하며,

이를 두고 베토벤은 스승이 시기한다고 생각해

사제의 관계가 한동안 틀어졌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비평적으로도 상업적으로

매우 큰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반면 에드먼드 모리스는 그의 책

“인간으로서의 베토벤”(프시케의 숲, 2020)에서

Op.1이 출판될 당시 

하이든은 런던에 체류 중이어서

이 일화가 시기상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아마도 Op.2의 피아노 소나타 세 곡에 대한

후일담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피아노 소나타 3번은 

피아노 3중주 3번만큼이나 혁신적이다.)

 

9

정확한 사실의 여부를 떠나

이런 후일담이 생겨난 것이야 말로, 

‘베토벤’이라는 전설적인 음악가의 

첫 시작에 적합하지 않은가. 

스승을 뛰어넘으려면

스승과 맞서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럼으로써 낡은 시대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헤르만 헤세 식으로 말하자면 

알을 깨고 나오는 새와도 같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거장의 탄생을 알리는

베토벤의 결정적인 순간. 

 

10

특히 피아노 3중주 3번 c단조는

1817 베토벤 본인에 의해 현악 5중주로 편곡

1819년 출판(Op.104)되기도 하는데,  

 

꾸준한 대중적인 인기에 바탕해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카우프만이

두 대의 비올라를 포함한 5중주를 위해

자신이 편곡한 악보를 베토벤에게 보내자

이에 대한 응답으로 편곡에 착수했다고

알려져있다. 

 

베토벤 스스로 

이 곡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다면

편곡 작업에 손대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11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해 나온 트리오 소라(Trio Sōra)의 

<피아노3중주 전곡 음반>(naïve)을 듣기 전까지

피아노 3중주 제3번이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https://youtu.be/5omk9qOjraM

                              

 

젊은 연주자들어서 더 그렇겠지만 

베토벤의 ‘con brio’의 진수가 느껴지는, 

아찔할 만큼 밀어붙이는 연주. 

 

섬세함에서는 잘 알려진 대가들보다

좀 모자란 듯도 싶지만, 

젊은 시절의 베토벤의 작품에

이렇게나 젋음으로 충만한 연주도 

충분하지 않은가.

 

12

피아노 3중주 3번의 

전곡을 듣고 싶은 분이라면, 

보자르 트리오(Baeux Arts Trio)의

녹음을 링크한다. 

(아쉽지만 라이브 동영상은 아니다.) 

https://youtu.be/BTl8lDc_BMA

                              

13

섬세함과 과감함, 

신선한 감각의 조화를 겸비한,

아마도 21세기에 이 곡을 해석하는 연주의

전범이라 할 만한 수프라폰 레이블(2020)에서 나온

스메타나 트리오(Smetana Trio)의 연주는, 

아쉽게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었다. 

다만 https://www.supraphon.com/album/577799-beethoven-piano-trios 에서

맛보기로 그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Beethoven: Piano Trios – Smetana Trio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Piano Trio in C minor, Op. 1 No. 3; Piano Trio in B flat major, Op. 97, the "Archduke Trio"; Piano Trio in D major, Op. 70 No. 1, the "Ghost Trio"; Piano Trio in E flat major, Op. 70 No. 2 Smetana Trio: Jitka Čechová -

www.supraphon.com

 

14

참고자료

http://www.lifesci.sussex.ac.uk/home/Chris_Darwin/WebProgNotes/pdfs/BeethovenPianoTrioOp1no3.pdf

https://bis.se/orchestras-ensembles/sitkovetsky-trio/beethoven-piano-trios-vol1

https://www.hollywoodbowl.com/musicdb/pieces/2858/piano-trio-in-c-minor-op-1-no-3

https://en.m.wikipedia.org/wiki/Beethoven_and_C_mino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