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건 대개 슬픔과 눈물 뿐이지만 

그러나 살아있다는 건 

때때로 기쁨이고 위안이어서,


무채를 썰다 남은 자투리를 씹을 때의 

그 알싸함이라든가

혹은 시금치를 데칠 때의 그

달착지근한 냄새,


이런저런 나물을 양푼에 버무리다

한 꼬집 집어올려 고개를 젖히고 

맛을 볼 때의 그, 


싱그럽다면 싱그러운 순간


살아간다는 

이 몹시도 번거로운 일을

그래도 해 볼만 한 것 아닌가 싶다.



참으로 절묘하다.
리메이크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니나 시몬의 I Put a Spell on You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Op.27-2,
‘월광’ 1악장의 도입부라니. 

‘월광’ 도입부의 반복되는 패턴은 
마치 끊임없이, 
주문이 효력을 발휘할 때까지 
반복해 읊조리는 그것과도 같으며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anyhow) 

무엇보다 우리는 주문을 걸 때 햇님보다는 
달님에게 걸지 않던가. 

2
그렇다. 
이것은 주문이다. 
당신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이 언제까지나 내 것이길 바라는 간절한 주문. 

밤에 문득 깨어 옆에 누운 그대를 보며, 
아침에 눈을 떠도 그대가 그 자리에 있기를, 
그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이 사랑이 영원히 변하지 않기를,
그대의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날은 오지 않기를. 

(아,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단지 덧없는 희망일진대!) 

무릇 변하지 않는 사랑도 있으나
그런 사랑은 익히 알다시피 한 줄이면 끝난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리의 관심을 끌고, 
우리의 마음이 이끌리는 것은, 
그렇다. 
쉽게 변하는 사랑,
곧 무너질 사랑, 
이뤄지지 못할 사랑, 
속으로만 삭이는 사랑.

캔디스 스프링스Kandace Springs의 새 앨범, 
The Women Who Raised Me (2020)에서는 
이 곡을 비롯해 
그녀가 영향을 받은 여성 뮤지션들의 노래 
12곡을 커버했다. 

물론 이 곡이 가장 인상적이었으나, 
다른 곡들 역시 매우 호소력 있는 노래들.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주문은 
곧잘 저주로 바뀐다. 

사랑이 증오로 변할 때,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불타오르’기 마련. 

6
이 곡에 ‘월광’의 1악장을 붙이면서, 
그녀는 혹시 미친 듯한 격정으로 몰아치는 
3악장도 염두에 두었을까? 

오, 바라건대
여기서 들리지 않는 그 분노의 악절들이 
(다행히도) 영원히 들리지 않기를. 

부디 그녀의 주문이 성공적이었기를, 
그녀가 바라지 않는 짓을 앞두고 있던 그가 
(You better stop the things you do) 
마음을 되돌렸기를.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그가 그녀의 곁에 남아있기를.


p.s.
이 라이브 동영상에는
음반에서 들리는 
색소폰(데이빗 샌본)이 빠졌다. 
더 담백해졌고, 더 절절해졌다. 

여성 연주자들과 같이 
세션을 구성한 것도 음반 컨셉에 더 맞는 듯.





寂滅에 다다르면 과연

 무슨 슬픔이 있겠는가, 

오로지 살아가는 것이 

슬픔과 눈물일 뿐

오대산 寂滅寶宮2020








나는 알지 못하네,

아직도 

또 언제까지도


모래가 허물어지는 것이

바람 탓인지 혹은

파도 탓인지

하조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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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곡우(穀雨). 

이맘 때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 했다. 


2

왕가위의 “동사서독”(1994)을 

십 몇 년 만에 다시 꺼내 본 까닭은

‘곡우’라는 챕터가 있다고 기억했기 때문이지만

경칩과 입하, 백로와 입추에서 다시 경칩, 

끝까지 본 뒤에야 


아아, 

기억이란 얼마나 헛된 것인지. 


3

아무려나 이제 보름쯤 뒤면 입하(立夏), 

여름의 문턱. 


이때 쯤이면 쌀밥을 뜻하는 

이팝’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입하 무렵 꽃이 피기 때문이라는 설을 지닌

이팝나무가 꽃을 피울텐데, 


엊그제까지도 별 소식이 없던 새순에

드디어 초록이 돌기 시작했다. 



마치 죽은 듯 흙빛이었던 새순이

붉은 피가 도는 듯 적갈색으로 변하고, 

하루이틀 사이 물이 오르며 

초록이 터져나오는 과정을 아침저녁 살피다보니,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 생명이구나, 

싶다.


4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야 

이런저런 식물들의 삶을 지켜보는 재미, 

새로운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데,


조그맣게 꽃자리에 

달리기 시작한 매실을 보고 나서야


열매는 꽃이 진 자리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꽃이라는 허물을 한꺼풀 벗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릇 덧없이 지는 꽃은 없는 것이니. 



5

그러나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은

무지한 사람인지라, 


해당화라 하여 얼른 사온 해당화는

알고보니 서부해당화, 꽃사과의 일종이었고

(꽃도 樹形도 아름다워 후회스럽진 않지만),


조팝나무 두 그루 사이에 한 그루를 더 심으려

가져온 식물은 왠지 나뭇잎 모양도 다르고

무엇보다 조팝나무는 품종에 관계없이

잎이 어긋나기 마련인데

이 나무는 마주나기로 나고 있는 것이 수상쩍었는데,

꽃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식물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것일까 답답해하다, 


몇 년 전 사놓고 까맣게 잊고 있던

“나뭇잎도감”(이광만, 소경자 지음, 나무와문화연구소, 2013)을 

서가에서 찾아내 

‘마주나기’와 ‘톱니모양’ 항목과

인터넷을 교차검색해보니,


아마도 

‘꽃댕강나무’인 모양.


인터넷에서 본 꽃은 충분히 탐스러워, 

꽃이 필 날을 또 기다리게 된다.  


6

아닌 게 아니라, 

이 수많은 나무며 꽃이며 

요즘은 그래스류와 허브류까지, 


해마다 새로 나오는 원예종과 개량종까지 

농원에서도 정확한 이름을 알기가, 

또 안다 해도 이 즈음이면

하루에 수많은 손님들을 받으며 정신없는 가운데 

정확한 묘목을 건네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어서,


그래서 해당화로 알고 가져온 나무는

알고 보니 서부해당화, 

중국 서부에서 자라는 꽃사과의 일종으로

중국에서는 꽃사과를 일반적으로 

해당화라 부른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주 온다며 농원에서 얹어 준 

꽃 화분 하나가 

장미매발톰꽃이라는, 

매발톱꽃의 서양 원예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결국 이름없는 꽃은 없고

꽃이란 제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는 걸

책에서 배운 지 수십 년 만에야 비로소,


그렇지, 그런 게로군

무릎을 치게 된다. 


7

곡우가 지나면 

이제 나무를 심기는 애매하고, 

아마도 텃밭에 식용작물을 심어야 할 터. 


입춘에 시골로 이사를 와서 

우수와 경칩, 춘분과 청명을 지나 곡우에, 

비내리는 곡우에 이 글을 적는다. 


그리고 곧, 

봄의 초입(立春)에서 

여름의 초입(立夏)으로.


ps.

그러고 보면 

“동사서독”의 영어 제목인

Ashes of Time은 어쩌면 영화에도, 

또 이 글에도 더 잘 어울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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