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와 쿠바, 그리고 커피. 

뭔가 ‘하드보일드’스럽다고 생각했다면, 

대략 비슷하다. 


첫 모금부터 훅, 치고 올라오는 흙냄새와 

마치 청량음료처럼 톡 쏘는 알싸함까지, 

지금까지 마셔본 어느 커피와도 닮지 않은 맛.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맛보아야 할’ 같은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나,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이 쿠바 크리스탈 마운틴 앞에서라면 

그런 시니컬한 태도는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다. 


흙냄새 뒤로 짧게 올라오는 신 맛이 뒷끝 없이, 

깔끔하게 잡맛을 없애주어 

입 안에 ‘맛’이 아닌 ‘향기’만 남도록 도와준다. 

그렇게 서서히 향이 엷어진 뒤에도 

입 안이 상쾌한 것이 특징. 


케냐 원두 값의 2배 정도니

(혹 더 비싸게 파는 곳도 있겠지만)

꽤 비싼 커피이나, 

직접 내려먹는다면 

큰 부담까지는 아니라 생각한다. 


원두 색도 그렇고 갈아 나온 것도 그렇고, 

다른 원두보다는 상당히 밝은 갈색을 띄는데

이게 로스팅의 차이만은 아닌 듯 하다. 

그렇다보니 드립을 해보면 좀 묽어보이게 마련.  

실제로 개성은 강하지만 맛 자체는 부드러운 편이어서

좀 강하게 내려도 부담스럽지 않을 듯 하다. 


첫 잔은 좀 연하게 내렸으나, 

식을수록 알싸함은 덜하지만 산미가 올라와서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로스팅한 지 나흘째 되는 원두를 사왔는데, 

보통 사흘째에서 이레째 정도가 가장 맛이 좋을 때라는 설명. 


모카포트는 나중에 시도해보고 추가하기로 한다.  




수마트라 린통이나 만델링과 호환 가능한, 

구수하면서 짙은 맛이 매력적인 커피. 


실제로 내가 원두를 사는 집에서는 

블렌딩을 할 때 린통 대신 쓴다고 한다. 

린통을 구하려 물어보니 아체 가요면 될까요, 

하는 대답이 나오는. 


사실 이 원두 이름을 들었을 때 어딘가 익숙했던 건

신문에서 자주 보던 반군지역이었기 때문이고, 

의아했던 건 그 지역의 분쟁이 어떻게든 마무리가 된 건가, 싶어서였다. 


아체를 우리나라에서는 Ache로 잘못 적기도 하던데, 

공식적으로 영어 표기는 Aceh인 듯 하다. 


내가 그리 좋아하는 맛은 아니지만, 

브라질과 함께 커피의 진한 향이 맡고 싶을 때면

종종 생각이 난다. 


역시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모카포트 등으로 

빨리 내려 뜨겁게 후후 불며 먹는 게 제 맛이라고 생각. 

향보다 맛으로, 깊은 맛으로 먹는 만큼

다른 품종들보다 오래 두고 먹어도 

풍미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고, 

그러다 질리면 더치로 내려도 훌륭한 커피. 


가볍고, 약간 밍밍한 듯한 느낌의 첫 맛, 

그리고 이어서 올라오는 구수한 바디감. 

조금 식으면서 짙어지는 산미(酸味; 신 맛). 


오래 남는 깊은 맛인데, 

인도네시아 린통이나 발리 피베리가 

입 안 한 가득 뭔가가 남는 느낌이라면

파나마 팔미라는 아주 산뜻하게 남는다. 


스트레이트하게 치고 올라왔다가 

뒷 맛도 아주 정직하게 떨어진다. 

그래프로 따진다면 곡선보다는 직선 그래프라고 할까. 

이를테면 네바다 사막을 건너다 야영을 하면서

코펠에 대충 원두를 부순 뒤 끓여 먹으면

진짜 맛있을 법하다면 너무 지나친 상상력일까. 


새로 볶았다며 권해 준 단골 커피집 사장님도 

아직 맛을 못 봤다면서 포장된 원두와 함께 

드립을 조금 내려 주셔서 같이 맛을 보니, 

정말 커피의 세계란 깊고도 넓구나, 싶다. 

(이렇게 직접 내려 준 서비스 커피를 같이 마시며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재래시장 단골 커피집이 있는 장점이다.)


그 사장님 얘기로는 코나와 비슷한 면도 있고, 

아마도 케냐AA를 좋아하는 애호가라면 좋아할 맛이라는 평. 

하지만 일반적인 평가에는 늘 예외가 있는 법이고, 

더욱이 코나는 먹어본 적이 없어 코멘트를 달기는 힘들다. 


에스프레소로 먹어도 참 맛있을 것 같아 

저녁을 먹자마자 얼른 모카포트로 한 잔 더 마신다. 

산뜻하다. 

밥 먹고 먹어도 참 좋은 커피다. 

앞서도 말했지만 

인적 드문 오지에서 끓여먹으면 폼 날 법한 커피. 


인도네시아 발리 피베리가 male coffee라고 불리우지만, 

발리 피베리가 왠지 머리도 수염도 덥수룩한 남자란다면

파나마 팔미라는 아주 깔끔하게 면도하고

머리도 잘 단정된 카우보이의 느낌. 


세상에 맛있는 커피 참 많다,

새삼 느낀다. 

해외 출장 다녀온 형이 선물로 가져와 처음 먹어본 커피. 

봉투에 ‘클래식 로스팅’이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현지에서는 로스팅 정도에 따라 구매할 수 있는 모양이다. 


봉투를 열면 마치 코팅이라도 한 듯 윤기가 돈다.  

과테말라와 인도네시아 린통이 섞여있는 듯한 맛과 향기.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잘 맞으며, 

목 뒤부터 올라오는 스모키한 느낌이 꽤 감칠맛 난다. 

‘아침보다 저녁에 어울리는 커피’라고 하면 너무 주관적인 걸까.


느리게 드립하는 것보다

모카포트(나 갖고 있다면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짧은 시간 안에 내려 먹는 게 더 맛있다. 

아이스로 먹어도 맛있을 법 하다. 




참 흔한 커피다. 

맛도 좀 흔하달까, 평범하달까, 

과테말라 안티구아가 어떤 맛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그냥......
커피 맛이예요, 라고 할 밖에.  


너무 진하지 않은 적당한 향과 

역시 너무 강하지 않은 적당한 구수함, 
그리고 베이스로 깔리는, 뒷맛으로 남는 달착지근함까지
두루두루 갖춘데다 균형도 잘 맞는 원두.  
누가 뭐라고 해도 기본 중의 기본인 원두다.

우리나라 포털에서 찾아보면 
대개 ‘스모키하다’는 표현이 있던데,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는 알겠지만
크게 공감가지는 않는다. 
목구멍으로 넘길 때 연기처럼 올라오는 
향을 묘사하기 위한 표현인 것 같은데, 
어쩌면 나의 ‘스모키함’의 기준이 좀 다른 지도. 
요는 각자 입맛은 다르기 때문에
마치 그 맛을 모르면 안 되는 것인 양
굳이 ‘스모키함’을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두루두루 갖춘 원두인 동시에
다른 원두와도 잘 어울리는 까닭에 
(물론 다른 스페셜티보다 비교적 저렴한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용 블렌딩을 할 때
빠지지 않는 품종이라고도 한다. 

다만 나의 경우는 아직 
이거다, 싶을 정도로 잘 어울리는 품종을 찾지는 못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케냐 피베리 정도가 어울리거나
아니면 아예 브라질처럼 구수한 맛이 어울릴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나중에 직접 해본 뒤 
업데이트하기로 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Updated on 22 June 2016:
오래 벗하기 정말 좋은 원두. 
독특한 향기와 단맛, 쓴맛이 조화를 잘 이룬, 
순하면서도 입안에 남는 맛이 일품이다. 
흔해서, 흔하니까, 라는 이유로 무시할 수도 있지만, 
어디에서나 파는 원두라면 
어디서나 통할 매력이 있다는 얘기도 된다. 
더구나 가격도 싼 편이어서 부담도 적다.  
늘 집 안에 100g씩은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원두. 



모카포트로 내리면 맛있다. 

내가 사용하는 모카포트가 4기압 정도라고 하니, 

더 높은 기압으로 더 빨리 내리면, 

다시 말해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리면 어떨까 궁금하다. 

(짐작컨대 더 맛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아이스로 먹으면 잘 어울리는 커피. 

이르가체페 첼바와 블렌딩해도 잘 맞는 편이다. 

첼바의 향이 강해서 좀 거북스러울 때 살짝 섞어주면 맛있다.

향기가 강한 원두에 구수한 맛을 더하기 위해 섞기 좋은 원두. 


드립 커피도 나쁘지는 않다.  

굵게 갈아 빨리 내리는 것이 내 입맛에는 나았던 듯 한데, 

드립으로 내리는 것보다 모카포트가 맛있다보니

덜 내려먹게 돼 황금비를 찾지 못했다. 

단맛을 내는 과테말라와 향미가 좋은 원두를 함께

블렌딩해도 좋을 것 같다. 




구수하다. 

숭늉이라 해도 믿을만큼 구수하다. 

Male coffee’라는 별칭이 붙어있듯 

요즘 하는 표현대로 ‘남자남자’하다고 해야할까. 

향보다는 맛이 강해서, 다른 것과 블렌딩하면 

인도네시아 피베리 맛만 난다.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린통의 중간 쯤, 이라는 설명이지만

브라질보다 더 맛이 강한 것처럼 느껴진다. 

알은 굵고 크며, 실제로 열매가 굵어서인지 

아니면 조직이 성긴 편인지

동일한 스푼으로 계량해 갈면 양이 더 적게 나온다.  


구수하기는 하나 잔맛이 나는 편은 아니어서 

나름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다. 

다만 맛이 너무 강해서, 

그리고 내 취향은 아니어서 다시 사 먹을 일은 별로 없을 듯 싶다.  



추가내용:

그렇듯 맛이 강하기 때문에, 분쇄하기 전의 볶은 원두 상태라면

향이 강한 원두보다 조금 더 오래 보관이 가능한 듯 싶다. 

향은 빨리 날아가도, 구수한 맛이란 그리 쉽게 변하지는 않기 때문.



다시 추가내용:

Male coffee라는 별칭은 사실 그 맛보다는

생두 열매의 생김새 때문에 붙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맛과 향 역시 그 별칭과 딱 어울린다.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중에서도, 

코체레 지역 첼바에서 생산하는 원두. 

꽃 향기와도 같은 풍미가 강하다. 


늘 다니는 원두 볶는 집에서 최근에 추천해 줘 꾸준히 먹고있다. 

이르가체페 콩가 지역의 원두와 함께 요즘 늘 구입하게 되는 품종. 

원두볶는 집 사장님에 따르자면 이르가체페는 

워낙 마을마다 농장마다 맛과 향기가 다르다고. 

 

향미가 강한 품종 중에서는 최고가 아닌가 싶다. 

처음 입 안에 넣으면 퍼지는 향기는 정말 형언불가. 

뒷맛도 잔맛이 없어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도 일품. 

비유하자면 정말 좋은 향기를 가진 여성(또는 남성)이 

휙, 스쳐지나가는 듯한 느낌. 

그래서 한 잔 마시고 나면 이내 다시 그리워진다. 


아무래도 향기가 많은 만큼 드립이 깔끔하고 좋지만, 

모카포트로도 조금 불을 약하게 하여 천천히 우려내도 맛있다. 

다른 품종보다 아주 조금 더 곱게 가는 게 낫다. 

가끔 뒷맛이 살짝 느끼해 질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만델링 린통이나 브라질처럼

구수한 맛이 있는 품종들과

1:1 정도로 섞어 먹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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