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새삼

뭐하러


— 나는 늙어가고 있다

의견을 사실로 포장하거나

사실을 의견으로 폄훼하거나, 


인터넷과 SNS, 유사언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견과 사실 사이 그 간극의 심연,


나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


과연 대중이 민주주의적으로

민주주의를 포기할 것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인가 아닌가? 


—포퓰리즘, 혹은 유사파시즘에 대한 

질문 하나.

음모론적인, 

그러나 합리적으로 여겨지는 의심: 


과연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대개 부와 권력의 꼭대기에 위치한 그들은

진짜 기후변화가 없을 거라고 믿는 것일까


혹시

기후변화는 이미 불가피하기 때문에

그 재앙이 전면적으로 도래하기 이전에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자기들의 것으로 삼고

독점적인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은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대중에게도 그것을 믿지 않게끔

선동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우리는 너희들의 고통은 상관않는다, 

어떤 의미도 없다, 

그 고통과 곧 뒤따를 죽음을 발판삼아 

우리는 살아남겠다는

일종의 책략은 아닌가.


무릇 대답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대답하기 전에 충분한 생각이 필요하다.


바꿔 말하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질문은

대개 대답할 가치도 없다. 


‘내가 곤경에 처한 저 사람, 혹은 생명을 

도와야 하는가’

— 이 질문을 제외한다면.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매력은 

선거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부정적인 점은

자유민주주의가 승자에게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이반 크라스테브, ‘다수결주의의 미래’


그리하여 우리는 마음이 바쁘다. 

지난 적폐도 청산해야 하고

새로운 미래도 준비해야 하는데, 

곳곳에서 번번히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

다시말해 상대를 완전히 짓밟는

지름길을 택한다면 그 길은 

우리가 갈망하던 민주주의로부터

한없이 멀어질테다. 


문제는 승리했을 때 

뭔가 성취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시 상대적으로 反민주주의적인 세력에

권력을 빼앗기게 되거나

혹은 극단적 포퓰리즘에 

자리를 내주게 되는, 


21세기가 처한 이 난감한 

딜레마. 



만약 제6의 대멸종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파멸의 속도를 늦추는 것과

차라리 파멸을 가속화시키는 것 가운데

생태적으로 어떤 것이 더 윤리적인 것인지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외롭기는 했지만 무겁지 않았다.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기 노동으로, 

아주 조금만 쓰고 만들며, 

손해 보더라도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살자는 원칙을

지키며 살았다. 

–최현숙, “할배의 탄생”


읽는 내내 저자의 

따뜻한 시각을 느끼게 해준 책.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 인생,

그러나 그저 그랬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든 가치있는 삶을 살아온

두 분의 할아버지와의 대담.  


저 구절이 나중에,

혹시라도 비문이 필요하다면

내 무덤에 새겨지면 어떨까,

남은 삶이라도 그렇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자전거길의 가장 좋은 점은


갈 곳도 바랄 것도 없이 나선 길이라도

그냥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한다는 것, 


혹은 (체력이 닿는 한)

도착하지 않은 채로 끊임없이 갈 수 있다는 것. 


개는 손으로 그리워.

— 정세랑, “이만큼 가까이”



친구가 개 한 마리를 더 들였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리트리버를 그리더니, 

이번에는 집을 잃은 보더콜리. 


보내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대략 30년쯤 전 내 품에 머무르던, 


그리 화목하지는 않았던 가족,

한참 피어오르는 여드름과

못됨과 못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나의 청소년기에 

다행스럽게도 온기를 내 품 안에 전해주던,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남의 손으로 넘어 가

최후도 같이 못 했던, 


혈통도 뭣도 없는 

시골 잡종견이었지만

어쩌면 내 인생에 가장 소중했던, 


그럼에도 아마도 

잊고 있었던 녀석이 떠올라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때보다는 조금은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 요즘이었다면

같이 할 수 있는 게 참 많았을텐데.


오랜만에 장롱 속에 앨범을 꺼내

녀석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참 못 해준 게 많구나. 


보고 싶다, 

아주 많이 그립다, 


손으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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