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여 년 보아 온

친구의 골든 리트리버를 쓰다듬다가

물끄러미 얼굴을 들여다보니

더이상 황금색이라기보다 희끗희끗,


입양할 때도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으니

이제 그녀도 할머니가 되었을테고, 

이렇게 가끔 만나 온기를 주고받는 일도

그리 얼마 남지 않았겠다 싶어 괜히, 


문득 어머니의 마지막 날들에 

병환으로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날들이 떠오르면서 

다시 또 괜히, 


이 하염없는 그리움의 날들에

다만 눈시울이 젖어들 밖에, 

그녀 얼굴에 내려앉는 세월의 흔적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코끝 시큰할 밖에.


우리는 스스로 잔혹해지지 않기 위해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슬픔이 나눠질 수 있다 말하지만,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오로지 나눠질 수 있는 것은

슬픔에 따라오는 분노와 배신감, 

혹은 억울함과 쓸쓸함 같은 것일 뿐

슬픔 그 자체가 아님을, 


슬픔은 그저 오롯이

혼자 견딜 수밖에 없는 것임을,

내 안의 눈물이 마르는 그날까지,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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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길을 떠날 때가 

되었다,


신발끈만 

단단히 묶는다면,

나침반이 없다 한들

어떠하리.


오래 생각해 온 여행,

2019년에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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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딱 한 달이다.

그날처럼 둥근 달이 

참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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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눈물이 이리도 많으리라고는

예전에 미처 생각지 못했다. 


눈물은 여기저기 매복 중인 것처럼

불쑥불쑥 의도치 않은 순간에,

아무 때나 흘러 내린다. 


돌아가시면 끝이 아니라, 

앞으로 점점 더 그리워질 것이라는

어느 선배의 말이 절실한 요즈음, 


보고싶다, 

이제 돌아가신지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몹시도 보고싶다.


엄마. 

이제 아프지 않기를. 

그곳에서는 드시고 싶은 거 다 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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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베이스와 트럼펫 만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낙엽지는 계절에 이토록 어울리는

Autumn Leaves라니. 


파올로 프레수의 스산하면서도 따뜻한

트럼펫 사운드는 마치 그가 이 앨범의 

다른 몇몇 곡에서 사용한 플루겔 혼처럼 들릴만큼, 

라스 다니엘손이 성기게 만들어낸 음악적 공간

고즈넉하면서도 풍성한 울림으로 채운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형용사들을 남발하게 하는, 

그리워 할 대상이 있다면 그리워 하게 만드는

늦가을의 이토록 애잔한, 


고엽枯葉’과 함께 하는 저녁. 

아마도 슬픔은 소수素數라서

달리 나눠지지 않는 것일테지,

그저 슬픔을 슬픔으로 견디는 수밖에

그저 저절로 닳아지길 기다릴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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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얘기로는 임종을 앞둔 사람은
종종 낮밤이 바뀐다고,
어둡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밤에
죽음을 앞둔 불안이나 두려움이 커지는 탓이라는데,

아, 혹시 어쩌면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더라도
대략 자시에서 인경이 울리기 전까지라고
그렇게 전해진 亡者의 시간에
미리 적응하기 위한 것은 아닐는지,

종일의 곤한 잠에서 깨어 통증을 호소하는
그녀를 보며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즈음 그녀와 나의 대화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그것과 같아서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참 그렇지,
로 이어지는),

죽음의 문턱, 섬망이 빚어내는
주옥같은 대사들에 울고 웃는다.
(내가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사람이었다면
미간의 주름도 조금이나마 덜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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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십 년 저쪽
네가 말없이 누워 있던 병원을
우연히 다시 지나며 떠올린다

아주 때때로 기억했으나
대체로 잊고 있었던 이름,
난감한 침묵 속에 비우던 술잔들

또 이십 년 뒤에 나는
어떤 죽음을 떠올리며
서러운 밤을 맞을 것인가

병원을 지나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저녁
기억한 이름과 기억할 이름에 대해

생각한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앞으로도 익숙해지지 않을 이 씁쓸함에 대해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로 옮기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는 그저 


그리워할 뿐, 

아마도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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