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 McDonough (narr.), William Ransom (pf.)
이런 종류의 퍼포먼스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시 낭송인가, 리트의 일종인가, 음악이긴 음악인가.
어쨌든 리햐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을 했으니
음악의 한 갈래일테고,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알베르트 슈트로트만Albert Strodtmann이 번안한 것이니
시와도 관계가 깊을텐데,
하여 찾다보니 19세기 말에 유행했던
“멜로드라마”라고 한다.
살롱 내지는 소규모 극장공간에서 펼쳐지는
시 낭송과 과하지 않은 ‘연기’, 그리고 악기의 협연.
당시에는 꽤 인기가 있었던 모양으로,
슈트라우스의 작품번호 38로 출판한 이 곡은
그의 교향시보다도 관객의 반응이 좋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당대에는 꽤 자주 무대에 올랐던 것 같은데,
아마도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벨 에포크 시대의
빈과 베를린의 유명한 캬바레의 밤을 수놓았을 법한,
그런 종류의 문학과 음악의 조화.
물경 1시간 10분에서 20분 사이의 퍼포먼스이니
영어를 왠만큼 잘하지 않고서는
평상어도 아닌 시어라 잘 들리지 않겠지만,
대충 인터넷에서 ‘이녹 아든’의 줄거리를 알고 나면
그래도 꽤 흥미로운 공연이 아닐까 싶다.
연기의 질로 따진다면 위 공연도 수준급이지만,
이 곡의 최초 녹음인 글렌 굴드와 윌리엄 클로드 레인의
조화가 매우 인상적이다.
1962년 5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코미디를 제외한 Spoken Words/Documentary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부족하지 않은가 싶다면,
어쩌면 슈트라우스가 이 곡을 쓴 가사는
테니슨의 영시가 아니라 독일어로 번안된
것이었기 때문인지도.
그래서 언어를 알아듣고 말고 여부를 떠나,
내게는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최고로 여겨진다.
피아노와 목소리의 완벽한 조화.
평생을 말(노래)하듯 연기하고, 연기하듯 말(노래)했던
이 성악가의 맺고 끊으며 강약에 변화를 주고
빠름과 느림을 엮어내는 기술은 정말 천의무봉이다.
덧붙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다양한 버전의 이녹 아든을 찾을 수 있는데,
그리스에서 이뤄진 이 공연은 도입부부터
내레이터의 연기까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리스어를 하나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이 언어가 가진 음악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동영상.
물론 전체를 다 감상하기에는 벅찬 작품이고,
나 역시 아직은 끝까지 동영상을 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19세기말(1897년작) 멜로드라마를
한번쯤 눈요깃거리로나마 감상해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