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버스 안에서 들으며

눈물이 글썽여버린 그리그의 녹턴.

루마니아 출신의 프랑스 피아니스트

마라 도브레스코(Mara Dobresco).

피아노를 칠 줄 모르니

기량이 얼마나 뛰어난 지를 논할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이 곡을 포함해 

그녀의 2018년 앨범

"밤의 태양들(Soleils de nuit)"에 수록된

17곡의 피아노 소품들은,

각각의 곡에 깔린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청자의 감정으로 전이시키는 데에

충분히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앨범에도 수록된, 

현대작곡가 Oscar Strasnoy가 

그녀에게 헌정한

Piano 4 중 자장가(Berceuse).



그리고 그녀의 프로모션용 영상도, 

담담한 영상이 그녀의 연주만큼 인상적이어서

덧붙여본다.

 

 

·

·

·

그런데

아침부터 이렇게 감정이 흔들린 날은,

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하는 건지

감이 잘 안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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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인더로 갈 때

빵굽는 냄새가 올라온다.

이 거친 표현을 

커피볶는 가게 사장님은

너티(nutty)함이 강한것 같다고

전문가적인 용어로 번역해 준다.


입으로 넘겨보면 그냥 구수한 맛은 아니고,

혀를 감아나가는 느낌이 뭐랄까, 

성격파 배우의 연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볶은지 열흘 내지 2주 정도 지나면서

다른 원두가 그러하듯이 

맛과 향이 미묘하게 변하는데,

본래의 거친 입자감이 좀 가라앉으면서

오히려 독특한 산미가 올라온다. 


이래서 어떤 원두에 대해

딱 한 잔 마셔봐 놓고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건

매우 성급한 일이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200g 정도 내려먹어보니

드립보다는 모카포트가 낫다. 

뜨겁게 후후, 불면서 마시는 원두.


여름에 다시 구해 

아이스로 만들어 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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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종소형 면허를 따고 나면

2종소형 면허제도 자체에 대해

할 말이 엄청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도의 불합리함과,

하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재미와,

소소하기는 하나 성취감과 기쁨, 


그러나 이상의 

 줄로 요약하고 만다.


나이가 들면 모든 일에

심드렁해진다더니,

채 하루를 못 가는구나.



목소리와 핑거 스냅,

더블베이스와 드럼으로만,

악기구성을 최소화했으나

어디 하나 부족함 없이 멜로디와

리듬을 만들어가는 실력이라니. 

(드럼이 멜로디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이 곡의 드럼을 귀기울여 보면 알 수 있다.)


이 곡의 원래 가수였던 

리틀 윌리 존의 목소리도 나쁘지 않지지만,

이토록 쿨cool한 열기fever라니.

그러니 원곡보다도 페기 리의 목소리가

이 노래를 대표하는 목소리로 

각인됐을 수밖에. 

 

58년에 발표된[각주:1] 

이 곡을 원래 잘 몰랐던 사람이라면

마치 2019년에 발표됐다고 해도 믿을만큼

놀랍도록 세련된 편곡이 일품. 


이런 노래라면 하루종일이라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반복해서 들을 수 있겠다. 

  1. 앞서의 리틀 윌리 존은 1956년 처음 음반으로 내놨다. [본문으로]

떠나신 지 이제 석달여, 

꿈에 두어 번 나타난

어머니 모습은


삶의 마지막 일곱달처럼

어딘가가 아프거나

괴롭거나,


이럴 줄 알았다면

보통의 기억을 더 많이

쌓아놓았어야 했는데,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걸 먹거나

멋진 것을 같이 보거나

근사한 일들을 같이 하거나,


아니 꼭 그리 

특별한 일들은 아니더라도

그저 보통의 기억을, 


매일매일의 일상을

더 선명하게

살아낼 것을 그랬다, 


그랬다면 

어쩌면 꿈에서의 모습도

씩씩할 때의 그 모습이 아니었을까, 


뒤늦은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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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슬픔과 눈물 뿐이다.

삶이 슬픔과 눈물 뿐이라는 것을 알면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고

그걸 모르면

허망한 것을 좇고 있다는 것이지.

박흥용, “새벽날개제36화


그렇다,

실로 그러하다. 


삶에 뭔가가 더 있다면,

커트 보니것의 말마따나

지루함일 것이다.


가벼운 재담들이 넘치는 시대, 

웹툰에서 이토록 깊은 슬픔과 눈물을, 

매 화마다 이렇게나 묵직한 삶을

엿보게 되다니. 


그러므로 오늘도 

슬픔과 눈물에 감사하기를, 

그렇지 않았다면 텅 비었을 삶이

슬픔과 눈물로 충만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내일은 또 새로운

슬픔과 눈물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반짝임을 잃은 현실이 

반짝이는 미래를 열 수는 없다.

그것이 내 무섬증의 실체일 것이다.

- 공선옥, "무섬증의 실체", 한겨레 2019.1.14(월) 26면


나는 오늘 

세상에 반짝임을 더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어른들이 세상을 좀 더

반짝일 수 있도록

힘쓰지 않는 사회라면,

과연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반짝일 수 있을 것인가.


되돌아보고 되돌아볼 일이다,

비록 나 자신의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그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의

면죄부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뒤늦게나마 세운, 

거창할 것 없는 새해결심이라면

언제 어디서건 전단지 내미는 손을

외면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즉슨, 그동안 부끄럽게도 대개 매몰차게 

모른 척 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눠주는 사람은 얼른 일 끝내고

수당을 받아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니 좋고,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들이 거리에 

구겨지고 흩날리며 버려지지 않아 좋고, 

저는 저대로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좋을테죠.


이런 당연한 것을 

결심씩이나 해야 하다니

참으로 미련한 인간이 저이겠습니다만

그래도 오늘로 작심삼일은 면한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그래도 조금쯤은

나은 사람이 되겠죠, 

부디.

목적지가 없는 이에게


삶이란 너무 긴


우회로

그러나 또 어떤 종류의 슬픔은

삶이 다한다 한들 닳아지는 것도 아니라서, 

그저 돌처럼 단단히 굳어지는 것이어서,


(어쩌면 그나마 시도 때도 없이 

일렁거리고 출렁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으나.)


언제라도 눈물은 충분하지 않은 법인

그런 종류의 슬픔도 있는 것이어서,

서투른 위로 대신 침묵이 나은 법도 

있는 것이어서,


(이제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누군가가 그, 자식잃은 부모들에게 

던진 말들은 얼마나 잔인하였던가, 

떠올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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