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스 얀손스

14 January 1943 ~ 30 November 2019


늘 간결하고 정확한 해석으로, 

어떤 곡이든 그 곡이 

마땅히 그러해야 할 법한 연주를 선사했던

거장 마리스 얀손스,


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는

그가 지휘했던 연주들에 

말로 다 못할 영향을 받았다.

그의 영면을 빈다.


(이 밤은 그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으로

새우게 될 것 같다.)

이제 더이상 이야기를 들려줄,

들려주고 싶은 누군가가 없어서,

오른손이 왼손에게, 왼손이 오른손에게.



비오는 12월 첫날 동네 뒷산에 오르니

산책로에는 떨어진 참나무 잎들이 가득한데, 

아주 자그마한 어린 참나무 한두 그루가

때아니게 푸르른 이파리를 밀어올리고 있었다. 


이제 해도 짧아지고 날도 추운데 차암—, 싶다가

아하, 큰 나무들이 무성할 때보다 차라리

잎사귀 떨어진 지금이 

어린 나무에게는 숨쉬고 햇빛을 받을 

어쩌면 최적의 시기로구나, 무릎을 친다.


저 푸르름이, 저 씩씩함이 얼마나 갈 지, 

내년 봄에 혹은 여름에 저 나무들이 살아남을 지

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생태계중요한 것은 개체의 지속이 아니라

생명의 순환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生이란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다, 

오로지 그것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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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으로 말을 잃은 자들에게 

음악은 위안이 되곤 하지만

말을 잃어 슬픈 자들에게

음악은 종종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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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가는 길에는 고작’ 해발 50미터 정도의 

동네 뒷산이 하나 있는데, 

산책로에 따라 가로등이 설치가 안 된 곳이 많아

밤길을 걷게 되면 실로 으스스하다. 


빨리 걷는다면 10분여로 지나갈 수 있고

바로 옆길로 빠지면 아파트 단지가 있어

특별히 위험할 일이야 없지만, 

작은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며 걷다 보면

내 그림자에 깜짝 놀라곤 한다. 


딱히 담도 크지 않고 겁도 많은데 

굳이 밤에 이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사람없는 길, 달빛도 느슨한 밤

과연 불빛도 없는 숲이 어떨지 상상하기에, 

조금이나마 맛보기에 적당하기 때문이고

그럼으로써 인간이 이룩한 것들에 대해

겸허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인간이 문명으로 이뤄낸 성취는 대단하지만, 

그리고 감사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편리함과 이로움을 얻기 위해 치러진,

자연이건 혹은 타인의 노동력이건 간에, 

그 비용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편리함은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어떤 것들의 희생이 

반드시 뒤따르기 마련일 터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을 떠나서, 

사람들이나 불빛이 보이지 않는 숲길은

스산하며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매우 아름답다, 

잠시 손전등을 끄면 내 자신이

마치 숲으로 스며들거나 빨려들 것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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