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를 나오는데 공사장 칸막이 앞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꽃 


잎사귀는 저 아래 두고 

누구를 기다리는지 꽃대를 이만치


까치발 든 어린 누이 같은

이리도 애틋한,


가는 길 붙잡고 

자꾸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꽃



식물을 잘 키우는 편도 아니고, 

결국 화분이란 물고기에게 어항 같은 것이라는

어느 가드너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새로 화분을 들이지는 않으나

어머니가 남긴 화분들만큼은

최소한 죽이지는 말아야겠다 생각 중인데,


사실 지금까지 이름도 몰랐고

네이버 렌즈로는 검색이 안 돼 

발만 동동 구르던 이 녀석을

얼마 전 분갈이를 해줬더니

줄기 밑부분에서 저리 귀여운

이파리가 돋아나고 있었다.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시도해보니

베이비 선 로즈로 나오기에

이파리가 자라는 모양과

잎의 형태, 마디처럼 나뉘는 줄기 등 

이모저모 살펴보니, 

아무래도 베이비 선 로즈로 통칭되는

화만초 압테니아(Aptenia cordifolia[각주:1])가 

맞는 듯 싶다.


조금 있으면 동생 잎도 

형님(혹은 언니?)처럼 잘 자라나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꽃을 피워올릴

줄기로 성장하겠지. 

그동안 너무 조그만 화분에

갇혀있었어서 그렇지, 

알고보면 엄청 잘, 

빠르게 자라는 식물이라고.


톡, 줄기 하나 잘라서 

다른 화분에 심으면

대견하게 하나의 성체로 성장한다나. 

어디 집들이 같은 때

하나씩 톡, 잘라서 선물해도

괜찮으려나, 싶은,


6월초에 나를 찾아온 

기특한 선물 같은 꽃, 

그리고 이파리.






  1. Cordifolia의 cor-는 심장(heart)를 뜻하고, 그 이름은 하트를 닮은 잎사귀 모양에서 나왔다. [본문으로]
angela hewitt waldstein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
안젤라 휴이트가 
베토벤 소나타 시리즈를 새로 내놓았다. 
Opp.2-1(1번), 14-2(10번), 
53(21번 발트슈타인) 과 54(22번).[각주:1]
드디어 그녀가 ‘발트슈타인’을! 싶어
얼른 들어보니 역시나, 싶다. 

2
32곡의 베토벤 소나타 가운데
가장 아끼는 곡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곡, Op.53 C장조이다. 

8분음표의 연타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듣고 있노라면
내 심장도 같은 박자로 뛴다. 
이토록 설레는 시작이라니. 

더 흥미로운 건
오른손의 경우 첫 반박자를 
쉬고 들어간다는 것. 
이미 첫 음표부터 
듣는 이의 혼을 빼놓는다.

그런 리듬의 담대한 사용이야말로
베토벤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하는 편.

* Downloaded from https://imslp.org



3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의 연주에 대한 평가는 
나의 경우 보통,
위 악보의 네 마디를 포함한
도입부 열세 마디에서 결정되곤 한다. 

특히 저 첫 네 마디에서
마치 메트로놈과 같은 정확성으로, 
그러면서도 디테일을 유려하게, 
첫 두 마디 뒤에 이어지는 
셋째 넷째 마디의 도약이 
얼마나 산뜻한가가 대체로 
나의 평가 기준인데,

물론 겨우 1악장의 열세 마디로  
전체 연주를 평가하는 건
연주자로서 좀 억울할 수 있겠지만,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발트슈타인’ 대신
‘ L'aurora (The Dawn)’으로 알려지기도 했고
도입부에서 동이 트는 걸 상상한다고 하니,
영 잘못된 평가 방식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4
그리하여 다시 듣는 
안젤라 휴이트의 ‘발트슈타인’은, 
그야말로 산뜻함의 정수. 

늘 믿고 듣는 그녀, 
박자에서도 흐트러짐이 없고
음표들도 뭉치지 않으며
날아갈 듯 오른손이 오르내린다. 
(음원이 인터넷에 아직 없어
링크를 못 하는 것이 유감이다.)

다만 첫 도입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뭐랄까 좀 더 대담한 해석이 
나의 취향인 듯. 

5
그래서 역시 발트슈타인’은, 
2014년 발매된 이후 줄곧
나의 레퍼런스가 되어 온
조나단 비스의 아래 연주를, 
아직까지 가장 아낄 수밖에 없게 된다. 


6
사족이지만 조나단 비스의 연주는
올해초 그라모폰誌에서도
이 곡의 Ultimate Choice로 꼽기도.

7
사실 클래식 악곡에 
C장조는 생각만큼 흔치 않은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서는
이 곡과 Op.2-3 (3번) 밖에 없다. 

우리가 익숙한 그 C장조이지만
이 곡이 연주자에게 요하는 
엄청난 테크닉이야말로
이 곡의 유명세와 평가에 기여했다고.

특히 앞의 도입부만 해도,
명인들 연주 가운데에서도
박자가 흔들리거나 음표가 뭉치거나,
아니면 셈여림의 섬세한 조절에서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도 많다. 

8
‘발트슈타인’은 베토벤 초기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Count Ferdinand Ernst Gabriel 
von Waldstein을 말한다. 


  1. Op.는 단수의 작품에 붙는 작품번호이고, 보통 복수의 작품을 열거할 때 Opp.를 쓴다. 마치 책을 인용할 때 한 페이지면 p., 복수의 페이지이면 pp.12~13 하는 식으로. [본문으로]


원래는 

잠깐 입어보려고 한 거예요, 

지난 설에 마련한 옷이 너무 고와서


소만도 지나고 강건너 모내기하러

엄마 아빠 새벽같이 나가신 다음

정말 잠깐만 입어보려고 했다니까요.


근데 뭘 두고 가셨다고

엄마가 돌아올 지 누가 알았겠어요,

보자마자 등짝을 후려갈기시길래

토라져서 빽, 소리치고 뛰쳐나오긴 했는데, 


제가 또 가긴 어딜 가겠어요,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에

새들이 낟알을 쪼아먹을까 올 밖에요. 


내일모레면 수확도 할텐데, 

그래도 이 헛헛한 속을 채울

보리밥도 먹을 수 있을텐데요.


그래서 잠깐 서 있는 거예요, 

정말 잠깐만이라니까요,

이렇게 날씨도 더워지는데.



철산동 근처 안양천변에는

보리밭과 유채밭이 조성돼 있다.

예전에는 보리밭만 보였는데, 

어느샌지 허수아비도 여럿.

(어쩌면 그동안 내 눈이 밝지 못해

못 보고 지나쳤던 것인지도.)


목도리페커리가 어떤 동물인지 찾아보다가, 

어랏, 돼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런데 페커리과가 따로 있다니 

그럼 돼지과가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돼지과는 없고 멧돼지과가 있는데, 

심지어 우리가 아는 돼지는 

멧돼지과–멧돼지속–멧돼지종의

아종에 불과했다. 


뭐랄까 그동안 돼지가 

훨씬 인간의 삶에 가까와서였는지

돼지가 기본이고 멧돼지가 하위분류인 것으로

오해해왔는데, 


따지고 보면 그렇겠다, 

멧돼지를 길들여 집돼지로 가축화된 것일테니

돼지가 멧돼지의 변종이고 

아종일 수밖에. 


그러나 또 페커리과와 멧돼지과는

우제목/경우제목의 아목인 돼지아목에 속하니, 

이런 인간중심주의적인 아둔함은

나만의 것은 아니겠구나 싶기도. 


참고삼아 적자면, 

멧돼지과의 학명은 Suidae인데

페커리과는 Tayassuidae로 new world pig, 

그러니까 ‘신대륙의 돼지(suidae)’라는 뜻. 

알고 나니 역시 학명은 훨씬 더 

이들의 관계가 정돈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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